쥐도 새도 모르게 쫄딱 망하지 글｜박창수 그림｜성주삼 “언니 자그마치 5천이야. 우리 큰 시누이는 1억이 넘구. 우리 둘째 시누이는 큰 딸 시집갈 돈 7천 만 원 몽땅 투자했잖아. 잠이 안 온다니까. 3천 만 원은 내가 모은 돈 이라구. 애들 아빠는 알지도 못해. 작년에 전세금 오른 거 2천 만 원만 투자한 걸로 안다구. 정말 미치겠어. 이 일을 어쩌냐구” “뭘 어쩌라구. 할 수 없지. 너 내가 제 작년에 얘기했지. 투기할 생각말구 여유 있으면 우리 동네에 밭이라도 하나 사두라구. 고추나 고구마 배추 이런 거 심어 놓구 일주일에 한번 씩 내려와서 일하고 올라가면 된다구. 세상에 공짜 바라는 것들은 죄다 망해야 돼. 듣자하니 그러더구먼. 펀드한 사람들은 다 제 돈으로 했고 주식한 사람들은 남의 돈 갔다 했다구. 말이 펀드지. 투자하구 세 달 만에 30%씩 이윤 남겨 먹으면 그건 사채업자보다 더 한 거지. 그런 허황된 공짜 바라다가 다들 무너진 거여. 너도 빨리 돈 빼서 그냥 은행 통장에 넣어 둬. 시간 지나면 더 똥값 된다” “어머. 그래도 언니는 지금 돈 빼면 3천 만 원도 못 건지는데. 나 억울해서 그렇게 못해. 기다려 볼 거야. 2천 만 원이면 일 년 내내 옷 한 벌 안사입고 저금해도 모으기 힘들어.” “지랄허네. 그렇게 아까운 돈 누가 거기 갔다 투자하라고 했니? 내 옷 한 벌을 사줬어봐라. 고맙다는 말이라도 듣지 어디 그것뿐이니. 김장 양념은 내가 다 챙겨줬을거다. 그렇게 지독하게 돈돈돈 하더니만. 에구 쯧 - 쯔” 며칠 전에는 사촌 남동생으로부터 밤늦게 전화를 받았더니 펀드 투자해서 1억을 날렸다고 하소연을 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젠 서울 사는 친여동생도 마찬가지로 펀드 잘못 투자했다며 우는 소리를 했다. 그야말로 한둘이 아닌 게 사실인 듯 했다. 수퍼댁도 자기 여동생 남동생 둘다 펀드 투자해서 몇천 만 원씩 날렸다고 하는 걸 보면 계산이 안되는 엄청난 돈이 펀드로 몰려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거였다. 대체 그 돈은 다 누구한테 간 거란 말인가? 대체 나라가 어찌 될라고 하는 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들만 자꾸 일어나는 것 같아 마음만 뒤숭숭했다. 여유 돈이 없어서 오히려 행복할 때가 바로 이런 때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먹고 산다는 사람들 모두가 주식과 펀드의 회오리 바람에 쏠려 갔다가 이제야 정신 차리고 있는데 자신 같은 서민은 투자할게 없어서 더 큰 욕심 낼 일도 없고 그런 속 썩을 일도 없으니 말이다. 저녁을 먹고 나서 남편과 함께 TV를 보는데 뉴스에는 어김없이 환율과 주식 얘기가 빠질 리가 없었다. 아나운서는 환율은 1400원대로 치솟고 머지않아 깡통주식도 속출할거라고 말했다. 또 펀드 투자했다가 돈 날리고 방황하는 직장인들이 한둘이 아니며 상인들은 한 달 장사해야 원가와 가게 월세 빼기 바쁘다고 하소연 한다고 전했다. 자녀들 유학 보낸 기러기 아빠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져만 가고 취업을 아예 포기한 백수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남편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누가 IMF 보다 더 어려운 시기가 온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나보군. 우리 경제가 다시 또 추락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누가 아니래유. 서울 경자도 아까 전화 왔는데 5천 만 원 펀드 투자했는데 3천 만 원도 안남았다구 우는 소리 하더라구유. 어찌 보면 이 기회에 확 바뀌었으면 좋겠시유. 아파트 반값으로 내려가고 주식 더 폭락하면 앞으로는 투기하는 인간들 좀 없어지지 않을까유” 남편은 허어 웃었다. “이 사람아 그런다고 돈 욕심내는 사람들이 땀 흘려 일하겠다고 할 거 같어. 우리나라 사람들 국민성이 요즘 이상하게 바뀌어버렸어. 모든 분야에 거품만 심하고 이런 현상 하루아침에 안바뀐다구. 시간이 좀 걸릴 거여. 다들 욕심을 너무 많이 내서 탈여. 마음을 비우고 성실하게 열심히 땀 흘리려는 사람들이 자꾸 줄어드는 거라구. 의식교육부터 다시 받아야 혀. 소위 지도층이라는 사람들부터 문제니까. 정치인 교수 경영자 고위층공무원 다들 한 통속이잖아. 국민 세금으로 월급 받아먹는 인간들이 회의석상에서 삿대질하면서 싸움이나 하니 나라가 잘 될 일이 없지 지금이 자유당시절도 아닌데 말이야” “아이구 그나저나 우리 애들은 펀드나 주식한다는 소리 못들었지유. 천만다행여유” 민자씨는 두 아들을 믿고 또 믿었다. 하지만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모르지 눈으로 지켜보지 않았으니까. 큰 애는 주변머리가 없어서 남의 돈 욕심도 안내고 제 밥그릇만 열심히 지키는 놈이지만 작은애는 달라. 그 녀석은 꾀가 많아서 무슨 일을 저지르고도 남을 놈여. 어찌됐든 아직까지 연락 온 것 없으니 별일은 없는가보네” “아이구 당신은 무슨 말을 그렇게 해유. 은행 대출까지 받아서 전세 얻어 결혼한 지 이제 일 년도 안되었는데 그 녀석이 어디서 돈을 끌어 오겄시유” “주식이나 펀드 같은 거에 미치면 남의 돈도 다 제 돈처럼 보이는 겨. 우리 동창 놈 하나는 정년퇴직한 친구한데 제대로 투자해준다고 꼬드겨서 1억 5천 만 원이나 갔다가 펀드 했다가 지금 이 꼴 났으니까 아예 자취를 감췄다는데 뭘.” 민자씨 듣자하니 마치 자신의 둘째 아들도 마치 사기꾼 기질이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 게 아닌가. 더욱이 아버지라는 사람이 아들을 그렇게 본다면 정말 말도 안되는 게 아닌가. 그녀는 버럭 화를 냈다. “워매. 당신은 생사람 잡겄시유. 비교할 사람이 없어서 둘째를 그런 사기꾼한테 비교해유.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도 말아유.” “이 사람이 또 애 이려. 감정을 앞세우지 말라구. 내가 의붓애비도 아닌데 왜 나를 나쁜 사람 취급하려고 그려. 얘를 들면 그렇게 사기 치는 놈들도 있다는 거란 말여.” 한밤중에 남편과 소리 내며 싸운들 무슨 소득이 있겠는가싶어 민자씨는 베게를 꺼내 한편으로 등을 돌리고 누웠다. 해가 짧아져서 그런지 저녁을 먹은 지가 몇 시간 흐른 것 같은데도 시간은 아홉시 밖에 되지 않았다. 몸을 뒤치다꺼리며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잠이 든 민자씨.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기 소리를 들었을 때는 한밤중이었다.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가 수화기를 들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둘째 며느리가 엉엉 울기만 했다. “얘야.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여. 밤중에 우는 거 아녀. 대체 뭔 일여. 울지만 말고 말을 하라구” “저기 어머님 죄송해요. 그런데 요즘 오빠가 그러니까..... 흑 흑” “예가 왜 이려. 초상난 것도 아닌데 그만 울어. 뭔 일 인지 말을 하라구” “죄송해요. 오빠가 카드에서 현금서비스 받아서 주식을 하나 봐요. 그런데 요즘 많이 떨어졌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냥 빨리 팔아버리라고 했더니 오히려 저한테 뭐라고 해요. 어머님이 좀.......‘” “뭐여. 이 미친놈이. 둘째 옆에 있는 겨. 얼른 바꿔봐” “오늘 회사 회식 있다고 아직 안들어 왔어요. 천 만원 돈 되는 것 같아요. 오늘 아침에도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손해보고서라도 제가 팔라고 했는데 말을 안들어요. 어머니” “참 기가 막힌다. 이 지경 되도록 넌 가만히 있었냐. 에구. 참 철없는 것들. 내가 내일 아침 당장 올라가마. 그리고 여자가 한밤중에 그렇게 우는 거 아녀. 울지 마라. 초상집도 아닌데” 전화를 끊고 나서 민자씨 찬물을 두 컵은 들이마셨다. 역시 남편이 우려했던 일이 그대로 발생한 거였다. 몇 년 전에도 신용카드 잘못 써서 곤혹을 치룬 놈이 또다시 일을 저질렀으니 남 흉볼 때가 아닌 거였다. 속에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 처럼 민자씨의 속은 말이 아니었다. 민자씨 입에서 푸념이 터져 나왔다. “그놈이 한번은 쫄딱 망해봐야 정신 차리지. 아이구 못살아 내 팔자야. 내속에서 나온 자식인데도 어찌 그런 놈이 나왔나.” 혼잣말로 한참동안 신세타령에 아들 욕을 하다가 방으로 들어서려는데 순간 어두운 남편의 얼굴이 정면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편은 전화통화 시작부터 줄곧 그녀를 지켜보고 서 있었던 거였다. 마땅히 할 말이 없는 그녀는 한마디 내뱉듯이 쏟아놓았다. “미친것들 손도 안대고 코 풀려고 하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쫄딱 망하지”. <필자연락처 : 019-609-9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