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는 짝퉁 인생인가 보네유 글｜박창수 그림｜성주삼 “ 우유 값이 비싸다구. 지랄 덜 하네. 커피 한잔에 4천원이 넘더라. 그거 한잔 값이면 여덟명이서 우유한잔씩 마신다. 도시것들은 싸가지가 없다니까. 젖소 키우는 사람들은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는데. 하여튼 싸가지들이 없어. 비싸서 처마시기 싫으면 마시지 말라구 혀. 왜 중국 멜라민인가 뭔가 하는 거 들어간 중국우유 사 쳐 먹으라구 혀.” “아이구. 언니는 왜 그렇게 신경질은 내고 그래. 우리 옆집 아줌마가 그러더라구. 우유값이 올랐다구. 그래서 해본 말여.” “어찌됐든 우유 싸게 먹는다는 것만 알라고 해. 원유값이 오르니 당연히 우유값이 올랐겠지. 그런데 아직도 멀었어. 2년 사이에 사료 값 두 배로 튄 것 생각하면 우유는 거져 먹는 겨” “보통 사람들이 그런 속사정을 아나. 당장 몇 백원 오르면 내 지갑에서 돈 더 나가는 것만 생각하지. 하여튼 불같은 성격은 언제 가야 죽을라나 몰라” “딴소리말구. 니들도 우유값 쌀 때 열심히 먹어.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앞으로 10년 후에는 우유도 먹기 힘들 거여. 돈 안되는데 어떤 놈이 끝까지 젖소만 키운다냐. 낙농가 줄어들면 그만큼 우유값만 비싸지는 겨. 아니면 싸구려 중국산 수입해다 먹든지” 안부 차 전화를 걸어 온 여동생에게 큰소리 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유값 비싸다는 말 듣고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물 값, 쥬스 값, 커피 값 보다도 아직 싼 게 우유값이다. 그 비싼 수입원두로 만든 커피를 하루에도 몇 잔씩 마시면서 우유값이 비싸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당장 쫓아가서 주둥이를 한 대 때려주고 싶은 게 민자씨 심정이다. 그녀도 일회용 봉지 커피를 가끔씩 마시기는 하지만 도시 젊은 사람들이 주로 마시는 원두커피들은 하나같이 비싸기만 해서 혀를 차지 않은 수가 없다. 커피 값이 보약 값이나 다름없으니 이건 말이 안된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게다가 그녀의 머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 것은 중국의 멜라민분유 파문이었다. 미국이 비싼 커피를 팔아먹으니까 이제는 중국이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인 멜라민을 분유와 과자에 넣어서 팔고 있으니 대한민국 사람들만 바보가 되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게다가 뭐든지 내손으로 직접 만들어서 먹지 않으면 믿을 수가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이 또한 참으로 슬픈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농촌에 살다보니 야채는 내손으로 직접 키워 먹으니 안전하고 우유도 내가 키운 젖소에서 짠 우유를 마시니 복 받은 게 아닌가 싶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면 어린 시절 그 시절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쌀이 귀해서 감자나 고구마로 밥을 대신하고 산에서 들에서 캔 나물로 반찬을 만들어 먹고 살았을 지언정 큰 욕심 부리지않고, 또 큰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지금 세상은 바뀌어도 너무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다. 차라리 고향의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만 있다면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인 것이다. 거실에 앉아 한참동안을 그렇게 과거로의 여행에 빠져있었다. 그때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여기 뭐 왔네” 남편이 쇼파 위로 던져놓는 편지봉투를 얼떨결에 움켜쥐고 발송지 주소를 보았다. ‘서울 여행사’라고 적혀 있는데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 마동목장 오민자를 알고 보낸 건지 궁금하기만 했다. 더 궁금한 것은 편지 봉투안에 들어있는 내용이었다. 민자씨는 손으로 대충 봉투를 찢고 내용물을 꺼내보니 한 장짜리 팜플릿과 여행사 직원 명함이었다. 중국여행 절호의 찬스! 45만원으로 상해 소주 항주 3박4일 여행. 단 10명 이상시 패키지 적용 윤봉길의사 혼이 서린 ‘홍구공원’, 옛 상해 임시정부 건물, 중국의 전통거리,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타워 ‘동방명주’, 상해 동물원 등등. 홍보용 팜플릿을 보면 그야말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만 같았다. 50만원이면 제주도 2박3일 비용이나 다를 게 없는데 고급 호텔에서 숙식 다 해결하고 여행까지 가능하니 눈이 크게 떠질 수 밖에. 하지만 남편에게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고민거리만 많은 사람에게 해외여행 얘기 했다가는 본전도 못 건질 게 뻔한 일이었다. 그녀 역시 해외여행을 못가서 안달이 난 여자도 아니고 자기 돈 50만원 들여 여행을 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다만 워낙 여행경비가 싼 것 같아서 자신도 모르게 잠깐 그 팜플릿으로 시선이 가는 게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오후가 되니 동갑계를 같이 하는 읍네 치과사모님으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별일 없죠 . 혹시 여행사에서 우편물 받은 거 없어요.” “글쎄 오늘 뭐 하나 왔더라구유. 혹시 거기도 받았시유” “호호호 . 그거 내가 여행사에 부탁했어요. 지난번에 우연히 계원들 몇몇이 모였는데 해외여행 얘기가 나와서 내가 좀 알아봤더니 중국이 싸고 괜찮더라구요. 그래서 일일이 설명해주는 거 보다는 여행사에서 플랜을 짜서 알기 쉽게 팜플릿을 보내주는 게 공신력도 있겠다 싶어서 그렇게 시켰어요. 어때요. 무척 싸고 실속 있어 보이지요.” “나야 해외여행에 대해 뭐 아는 게 있시유. 근데 싸긴 싸대유.” “그럼요. 싸고 말구요. 우리 목장 사모님도 그간 목장 일 하느라 애 많이 쓰셨으니까 이번에 중국여행으로 스트레스 좀 푸세요. 아셨죠. 내일모레 그러니까 15일까지 결정을 해줘야 하니까. 전화로 연락주세요” 여우가 따로 없었다. 치과사모님은 마치 자기가 여행사 직원이나 된 것처럼 나서는 게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민자씨는 생각해보고 또 해보고 그랬지만 남편과 함께 가는 것도 아닌데다 가뜩이나 멜라민 파동으로 문제가 커지고 있는 중국여행이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동갑계원 여럿한테서 같이 가자고 전화가 왔지만 민자씨는 시아버지 제사를 핑계거리로 삼아 갈 수가 없다고 전했다. 동갑계원 열세명중 여행을 가지 않은 사람은 민자씨와 수퍼댁 그리고 군청 사모님이었다. 군청 사모님은 마음은 가고 싶어도 요즘 군청행사가 많은지라 어쩔 수 없이 못간 케이스였다. 뒤늦게서야 남편은 이런 사실을 알고 왜 가지 않았냐고 했지만 이미 인원이 확정된 후였고 무엇보다 민자씨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리고 한 보름이 지났다. 수퍼댁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목장댁 얘기 들었어.” “무슨 얘기를. 나야 산골에 갇혀 사는 사람인데.......” “아이구 글쎄 계원들 중국여행 갔다가 엊그제 돌아왔잖아. 다들 난리가 아니야. 누구는 참깨가 싸서 두말을 사왔는데 방앗간에 가서 기름 짜보니까 국산 깨 절반도 안나오더래. 또 어떤 이는 우황청심환을 사왔는데 약국에 가서 보여줬더니 가짜더래. 그뿐이 아니야. 말로는 48만원만 내면 된다고 했는데 막상 가니까 뭐 구경하는데 얼마 내고, 가이드 팁 걷어 주고, 저녁에 춤추러 가는데 얼마 내고 뭐 그래서 하여튼 1인당 70만원은 넘게 낸 셈 이라고 하더라구. 그럼 그렇지. 패키지여행이라는 게 안봐도 비디오야. 그런데 제일 큰 바가지를 쓴 사람은 치과사모님이래. 글쎄 그 여편네는 한국에서 보다 싸다고 해서 명품 시계하고 코트를 사왔데. 그런데 글쎄 그게 짝퉁이래잖아. 하여튼 똑똑한 척 하는 여자들이 더 바보 같다니까” “어찌됐든 구경은 잘 하고 왔겄지유. 그런데 돈 들이고 갔다 온 여행인데 어찌됐든 안됐네유.” “그러게. 어찌 보면 우리네는 안가길 잘했지 뭐야” 여행 다녀온 사람들 얘기를 미주알 고주알 전화로 늘어놓는 수퍼댁의 얘기를 마냥 들어주던 오민자 여사는 순간 머리를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곧장 입밖으로 나왔다. “그 여자는 짝퉁 인생인가 보네유. 자기 신랑도 의사라는 말만 듣고 일 먼저 저질렀는데 알고 보니 전처 자식까지 있었다면서유” 그러자 수퍼댁은 깔깔대며 한수 더떴다. “목장댁은 말도 잘해. 맞아 그 여자 짝퉁이야. 왜 지난번에 서울 쇼핑가서도 그랬잖아. 150만짜리 그 핸드백. 진짜인줄 철석같이 믿고 사왔는데 알고보니 짝퉁이었잖아. 하하하 .......,” <필자연락처 : 019-609-9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