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란이 같이 힘이 강해진다니까 글｜박창수 그림｜성주삼 “ 내일 모레가 추석여. 시장 보러 가야하는데 겁부터 난다니까. 뭔 놈의 물가가 이렇게 비싼 거여. 사람 환장하겠구먼” 서울 사는 여동생의 안부 전화를 받은 민자씨는 동생네 안부를 묻기도 전에 추석 걱정 먼저 풀어놓는다. “아이구 언니 말도 마. 안오른 게 하나도 없다니까. 아니, 유가는 다시 내렸는데 왜 물건 값은 올려놓고 안내려가냐구. 다 도둑놈들이라니까. 돈 몇 만원 가지고 마트에 가야 살게 없어. 그래도 시골은 야채 같은 건 많이 안 사 먹잖아” 같은 대한민국 땅이니 청주가 올랐으면 서울도 오르기 마련이다. 동생의 말처럼 그나마 농촌에 사니까 야채값은 안들어 가니 다행이다 싶었다. 정 많은 민자씨 야채 얘기가 나왔으니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많지는 않지만 열무, 배추, 고추 다 먹을 만큼은 크고 있거든. 너 언제 내려와서 가져가라. 사먹으면 다 돈이지 뭐.” “아이구 언니도 참. 오히려 야채 값은 싸. 공산품 가격이 비싸서 그렇지. 야채는 농사짓는 사람들 인건비도 안나올 정도로 싸다니까. 사먹으면서도 농민들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구.” “지랄하네. 돈도 돈이지만 내가 키운 건 농약 안하고 키운 거니까 갖다 먹으로라는 겨. 싫으면 관둬라. 남들은 없어서 못 먹는다던데.” “아이구 언니 또 삐졌어. 알았어 이번 주말에 내려갈게. 우리 영미가 아토피가 심해서 사실 무농약 유기농 야채를 먹어야 되긴 해. 그리고 시골에서 직접 키운 건 고소하고 맛있잖아. 나 내려가기 전에 필요한 거 있으면 전화해. 사다줄게” 상추, 아욱, 열무, 얼가리, 대파 등 야채는 비만 한번 뿌리고 나면 손바닥 만큼 씩 쑥쑥 자라 오른다. 민자씨네 두 식구 먹기에는 양이 너무 많아서 여름 내내 허구헌날 읍네 수퍼댁에 갔다 주고 서울 아들에게도 두 번이나 택배로 보내주었다. 8월이야 올림픽 보느라 시간이 훌쩍 지나갔고 그나마 이런 저런 걱정거리는 그냥 잊고 넘어갔다. 그런데 9월 들어서니 추석은 코앞에 걸려있고 여기저기 돈 들어갈 일만 많은 것 같았다. 고향 친구나 학교동창들 누구할 것 없이 이제는 자식들 결혼 시킬 나이들인지라 가을만 되면 일주일에 결혼식장 두세 곳 찾아가는 건 기본이었다. 두 아들 결혼시키면서 오민자 여사는 받아 먹을 만큼 받았으니 이제는 토해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말처럼 제대로 맞아떨어지는 명언도 없는 것 같다. 주말에 동생이 온다기에 시장을 한번 다녀오긴 해야겠다 싶어 민자씨는 읍네로 나갔다. 동생만 오면 있는 반찬에 밥 한끼 먹여 보내면 되지만 제부가 같이 올 터이니 반찬이라도 있어야겠다 싶어서였다. 조림간장, 세제 한통, 백 장짜리 김 한 톳, 당면 한 봉지, 버섯, 돼지고기, 국거리 쇠고기, 먹갈치 두 마리, 라면 다섯 개, 다시다 한 봉지, 백 설탕 등등 농협에서 십 만원을 찾아 시장을 보고나니 남은 돈은 천원 짜리 세장이었다. 추석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불과 한달 전 보다도 가격이 더 오른 것 같았다. 시장을 다 본 후 수퍼댁네 파라솔에 앉아서 수다를 떨었다. “요즘 장사는 어때유. 추석이 다가오니까 좀 괜찮지 않나유” 민자씨의 말에 수퍼댁은 정색을 한다. “목장댁이 눈으로 봤잖어유, 요즘 손님 없어. 이 장사도 이젠 끝났다니까. 할인점 들어 오고서부터는 매출이 절반으로 떨어졌다니까” 민자씨는 동갑 계원이자 친구 같은 수퍼댁을 생각해서 수퍼댁내 가게에서 살 수 있는 건 대부분 그곳에서물건을 사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럴 리가 만무했다. 한 동네 사람일지라도 단 몇 십원 만 싸면 동네가게 이용안하고 할인점으로 가는 게 요즘 추세다. 그 때문인지 읍네에서 손가락 안에 들었던 수퍼댁네 가게도 손님이 많이 떨어져나간 것이다. “요즘 경기가 않좋은데다 공산품 가격이 너무 오른 것도 문제여. 안그려유” “그건 그려유. 물건 값 오른 건 내가 더 잘 아니까. 그런데 있잖어유. 대형 할인점들로 물건이 많이 들어가다보니 어떤 물건은 아예 우리한테까지 오지 않는 것도 있다니까유. 나 참 살다보니 웃기도 않는 일이 벌어진다니까.” “아니 그건 뚜 무슨 말여” “대형마트들이 메이커한테서 물건을 싹슬이 해가니까. 우리한테 까지 물건이 안오다는 거유. 도대체 이 나라는 어떻게 된 게 있는 놈만 더 좋게 해준다니까. 게다가 요즘 나오는 물건들유. 중국거 아닌 게 거의 없어유. 이러다가 나라 말아먹지.” 올림픽 열기 때문에 한동안 정치인들 욕 안얻어먹구 정부도 위기를 모면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차피 한 순간일 뿐이다. 서민들이 먹고 살기 힘들고 1차산업 종사자들이 힘들면 여기저기서 불만만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일이다. 민자씨도 아침 뉴스에서 들은 내용을 다시 기억해내면서 열을 올렸다. “그러게 말여유. 물가 올라서 서민들 힘들어 죽겠는데. 글쎄 그런데도 아직 정신 못차리는 일부 구의원들은 의정활동비를 심하게는 75% 나 인상했다잖어유. 아이구 때려 죽일놈들. 국민이 낸 세금가지고 지랄들을 한다니까. 선거할 때는 지들이 봉사하는 마음으로 지역을 위해 일한다고 말해놓고서 왠만한 기업체 부장급 되는 연봉을 받아 쳐먹잖아. 그런데 50% 75% 올렸다니 그게 말이 되냐구. 하여튼 다 도둑놈들여” 민자씨는 거침없이 대한민국 현주소를 사정없이 비판해대며 심한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수퍼댁은 진정이라도 시키려는 듯 말했다. “아이구 그래도 자기네는 그나마 다행이야. 지난번 유대 인상됐잖아. 오늘 우유 들어온거 보니까 그 때문인지 가격이 올랐더라구.” 하지만 민자씨 기대 수준에는 어림도 없는 인상이었다. 사료값 따지고 인건비 따지면 지나번의 원유값 인상 수준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말했다. “슈펴댁이 몰라서 하는 말여유. 사료값이 엄청나게 비싸잖아. 그런데 사실 우유값을 보라구. 우리 동생이 그러더라구. 편의점이 수퍼마켓 가서 음료수 하나 사면 제일 싼 게 팔백원대이고 다 천 원 대 넘는 다더라구. 세상에 물 값보다도 싼 게. 생수가 천원도 넘는 게 있구.” “아이구 그걸 가 왜 모르겠어. 나이 든 사람들은 음료수 비싸니까 그 대신 우유를 먹는 사람들이 많다니까. 젊은 애들이야 가격이야 상관없이 지들 먹고 싶은 거 먹지만” 민자씨는 한참 수다를 떤 후 해 넘어가기 전에 집으로 가려고 수퍼댁 가게에서 나오려고 하는데 옆집 영식엄마가 들어왔다. “영식엄마가 무슨 일로. 아니 아까 나 우유차 타고 나올 때 보니까 집에 있더니만” “내일이 우리 그이 생일이어유 그래서 시내 장보라 나왔다가 들렸지유. 일 다보셨으면 같이 들어가유. 제가 차 끌고 나왔으니까유” “그려 잘됐구먼. 나 버스 타고 가다가 걸어 들어갈 생각하니 아찔혔어. 그나 저나 날 더운데 뭐라도 마셔. 뭐 마실거여. 내가 살테니까.” 민자씨 막내동생 같은 영식엄마에게는 그래도 자신이 사야 되는게 도리이다 싶어 뭐든지 마시라고 재촉했다. 그러자 영식엄마가 말했다. “아이구 제가 사드려야 하는데. 아줌니 정 그러시면 저는 목 마르니까 생수나 한병 마실래유. 목마를때 음료수 마시면 더 갈증나더라구유” 근 순간 민자씨 아되겠다싶어 냉장고로 가는 영식엄마를 불러 세웠다. “아이구 영식엄마도 뭘 모르는 구먼. 갈증 날 때는 우유가 최고여. 우유 하나 마셔. 그게 몸에도 좋잖어” 그러자 영식엄마는 조금은 미안해하는 눈빛으로 민자씨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럴까유. 우유가 더 비쌀텐데” 순간 민자씨 사실은 우유값이 제일 싸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다는 말이 참으로 개그수준이었다. 아니 비교 대상이 너무 심하다 싶었다. “가격이 문제여? 몸에 좋은 게 최고지. 우유만 꾸준히 잘 마셔도 건강은 걱정 없어. 왜 거시기 그 누구여 금메달 딴 여자. 그려 미란이 같이 힘이 강해진다니까.” 그러자 수퍼댁은 배꼽을 잡고 한바탕 웃어버렸다. 민자씨 말대로 우유 홍보했다가는 여성들한테 무시당할 일이다. 운동선수가 아니고서야 어떤 여자가 역도선수 같은 몸을 원하겠는가. 이왕이면 다홍치마 효리같은(?) 몸매를 원하지. <필자연락처 : 019-609-9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