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서방한테 시집 가라구 글｜박창수 그림｜성주삼 “미안혀서 어쩌냐. 내가 큰 실수 한 것 같다. 옥자야 정말 미안혀. 니가 이해혀” “어휴 괜찮아. 오랜만에 만나서 그간 나에 대한 걸 몰랐잖아. 사람 사는 게 다 그래. 실수 안하고 산다면 그건 신이지. 사람이 아니잖아” “아이구 내 입이 방정이지. 그나저나 젊은 남편하고 살아서 그런 너도 젊어 보이더라” “야 야 . 말도 마. 남 보기에는 그렇겠지. 남자들이라구 별 수 있니. 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그래. 우리 신랑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허구 헌날 가르치며 살아” “나이 오십이면 알 것 다 알지. 내가 보기에도 진지하고 사람 괜찮더구먼” “그래. 한편으로 생각하면 내가 복 있는 년이지. 이 나이에 착한 사람 만나서 사니까. 얘 민자야. 언제 우리 한번 놀러가도 되지. 나는 아직도 목장 생각만 하면 알프스 목장소녀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거 있지. 하하하” “그려. 언제든지 와라. 초지가 조금 있긴 하지만 그렇게 넓진 않어. 어찌됐든 한번 와라 옛날처럼 찬밥 상추쌈 싸먹고 고구마 쪄먹고 그러자” 중복 날 초등학교 동창생들 중 여자들만 모인다는 연락을 받고 서울에 올라갔던 오민자 여사. 동창생 80명중에 남자들 빼고 먼저 세상 떠난 애들 빼고 이렇게 저렇게 빠지고 나니 참석한 애들은 이십 여명 됐다. 점심을 시끌벅적하게 먹고 나서 그중에서도 친했던 친구들 몇몇이 자리를 옮겨 차를 한잔 마시는데 아무래도 가장 오랜만에 만난 옥자와의 수다가 길어졌다. 너무 반가워 손을 잡고 옛날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옥자 옆에 웬 남자가 나타났다. 젊어 보이는 그 남자가 인사를 하길래 얼떨결에 민자씨는 말했다. “이 동생이 예전에 우리 육학년 때 목욕하는데까지 따라다니던 그 남동생이여. 아이구 인물 훤칠하다 예. 잘 있었어” 그러자 옆에 있는 친구들이 깔깔대며 웃고 옥자는 갑자기 아니라는 눈짓을 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정말 난감해 하는 사람은 남자였다. 얼굴이 붉어지더니 그저 미안해 하는듯한 미소만 보냈다. 민자씨 그녀는 어찌된 영문인지를 몰라 두리번거릴 뿐 이었다. 그제서야 옥자가 자기 신랑이라고 정식으로 인사를 시켰다. 알고보니 시집가서 5년 만에 신랑이 교통사고로 죽자 애 둘 키워 시집 장가 보내고 혼자 남았는데 1년 전 재혼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무려 여덟살이나 어린 남자였으니 민자씨는 남동생인줄 알았던 터였다. 그리고 집에 내려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큰 실수를 했다 싶어서 다시 옥자에게 전화를 한 거였다. 그런데 사건이 이쯤에서 끝났으면 좋으련만 평소에는 그녀의 전화 통화 내용에 관심도 없던 남편이 전화내용을 엿듣고 나서 한마디 던진 게 화근이었다. “아니, 나이 육십 다 되어서 무슨 재혼여. 그 여자가 돈이라도 좀 있나보지. 나이 어린 신랑을 만나구” 듣고 보니 민자씨 기분이 좀 언짢았다. 아니 여자는 어린 남자와 결혼하지 말라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돈이 있어야만 자기보다 어린 남자를 만날 수 있다는 식으로 들리니 같은 여자로써 불쾌하기까지 했다. “당신은 참말로 이상혀유.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여자가 어쩌구 저쩌구여유. 아니 남자들만 자기보다 젊은 여자하구 살라는 법 있시유. 말도 안되는 얘기 하덜 말어유. 요즘 젊은 아이들은 연상 여인 연하 남자 뭐 이런 식으로 사귀는 게 보통이거든유. 참 모르면 가만이나 있지” “그럴 줄 알었어, 왜 당신도 젊은 남편 못 만나서 억울혀. 억울하면 내가 양보하지 뭐. 하여간 요즘은 나이가 드나, 젊으나 다들 왜 하나같은지. 쯔쯔” 남편의 대응이 이쯤 되고 나니 민자씨는 정말로 참을 수 없는 모욕 같았다. “당신 지금 그게 무슨 말여유. 아니 뭐 잘못먹었수. 그럼 이혼하구 새서방한테 시집가라구.. 그게 말이야 개떡이야. 살다 살다 별일을 다 보네 . 그런 식으로 말 함부로 하지 말어유” “아니 왜 나한테 성질을 내구 그려. 젊은 남자 타령하니까 그랬지” “얼레. 기가 막혀. 누가 들으면 날 화냥년으로 알겠구먼. 그려, 나도 젊은 놈 하나 만나볼 거여. 삼십년 넘게 신주단지 모시듯하며 살았는데 이제 와서 뭐라구” 민자씨 홧김에 걸레통을 안방 문에 집어 던지고 밖으로 나왔다. 그 산골에서 갈 데가 어디 있겠는가. 읍네 밖에. 머리도 안 빗고 옷도 집에서 입던 그대로 가출을 한 셈이다. 민자씨 읍네 수퍼마켓 친구에게 갔더니 마침 이민 간 남동생이 비즈니스차 나왔다가 누님댁 이라고 들린 거였다. 민자씨 동생이라는 사람에게 가볍게 인사만 하고 아무말 없이 파라솔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평소의 모습과는 달라 보이는 민자씨의 표정과 옷차림을 보며 슈퍼댁은 말했다. “무슨 일이야. 오늘 5일장날도 아닌데” “뭔 일은 그냥 왔어. 날고 더운데 냉면이나 한 그릇 사 먹을라구” “어머, 웬일 여. 평소답지 않게 . 우리 남동생이 왔는데 마침 날도 덥고 혀서 우리도 잠깐 가게 문 닫고 저기 냉면 잘하는 집 갈려구. 잘 왔네. 같이 가” “아녀. 동생분하고 갔다 와. 내가 가게 봐줄게” “날 더워서 손님도 없어. 일어나” 하는 수없이 수퍼댁의 성화에 못이겨 함께 냉면을 먹으러 갔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것은 민자씨의 마음이었다. 남편하고 말다툼은 언제 했냐싶게 수퍼댁 남동생과의 점심식사는 화기애애하고 즐겁기만 했다. 나이가 두 살 차이라고 하니 누가 보면 친구라고해도 믿을 정도였다.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하면서도 이목구비가 선명하며 남자답게 굵직하여 호남형에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식사하는 동안 그 남자는 냅킨을 건네주고 컵에 물을 따라주었고 아주 다정한 눈길로 미소를 보내곤 했다. 친구의 동생이라는 느낌 보다는 근사하고 멋진 동갑나기 남자와 함께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그러는 동안 민자씨는 자신의 옷차림이 어떠한지 잊고 있었다. 옥자의 젊은 남편 보다는 차라리 중후함이 풍기는 이런 남자가 자신에게는 잘 맞겠다 싶은 생각도 했다. 민자씨 그렇게 즐겁게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가슴 떨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다름 아닌 수퍼댁이 손님 때문에 식사를 정신없이 하고 끝나자마자 가게로 가자 그 남자와 단둘이 남게 된 것이다. 남자는 식사를 했으니 근처 커피숍에서 차라도 한잔 하고 가자고 제의했고 민자씨 순순히 응했다. 상대는 누나의 친구니까 매너있게 대접을 한다는 입장일 수도 있었으나 민자씨는 그게 아니었다. 상대의 친절과 배려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끌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남자의 말이 그녀를 더욱 그 상황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누님은 듣던 대로 참 미인 이십니다” “누가 나이 쉰 아홉이라고 하겠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40대 초반으로 보입니다” 이런 아부성 멘트만이 아니었다. 커피에 프림과 설탕까지 직접 넣어주는 매너는 민자씨로 하여금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을 못하게 했다. 순간 민자씨는 이런 말이 떠올랐다. ‘홧김에 서방질 한다더니 내가 지금 그런 건 아닌가’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시계는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지만 더 이상 함께 있는 것은 아니다 싶어 민자씨는 서둘러 일어났다. 그러자 남자는 자신이 며칠 더 머무를 건데 목장에 한번 들리겠다는 거였다. 안되겠다 싶어 민자씨는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다고 극구 거절하면서 차라리 자신이 며칠후 읍네 볼일이 있어 나올건데 그때 시간되면 식사 한 끼 대접하겠다고 했다. 다시 만날 생각을 하니 민자씨 돌아오는 발걸음이 너무도 가볍고 유쾌하고 가슴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어찌됐든 데이트 한번 제대로 한 민자씨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척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남편은 마치 뒤에서 지켜본 듯 말했다. “냉면 먹고 커피 마셨더니 이제 기분 좀 풀어 졌어” 너무 놀라 당황해하자 남편이 하는 말은 그녀를 그만 기절시키는 말이었다. 그리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경준이 그 녀석 내일 모레 우리집에 오라고 했어. 고향동생이기도 하지만 대학 후배야. 인물 참 좋지” 꿈만 같았던 몇시간의 추억은 그야말로 여름 홍수에 논두렁이 푹 꺼져내리듯 그렇게 사라지고 있었다. <필자연락처 : 019-609-9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