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것들 고생 좀 해봐야돼유 글｜박창수 그림｜성주삼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 - 리 ......,” 두 딸이 거의 동시에 울음을 터뜨렸고 노래가 끊긴 가운데 반주만 지속됐다. 하객들 중에서도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이들이 보였다. 민자씨 역시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끝내 눈물이 나왔다. 청상과부가 되어 리어커 야채장사를 하다 다리를 다쳤지만, 그 다리를 저름거리며 장사를 하여 두 딸을 제대로 키워 시집을 보낸 한 여자의 사연 많은 70 평생은 자식은 물론이고 그녀를 지켜보는 많은 이들의 가슴을 자극시켰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동갑계원인 수퍼댁의 큰 언니였다. 짧은 시간동안 얼마나 울었는지 수퍼댁의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수퍼댁은 늘 만나면 자기 큰 언니가 존경스러우면서도 불쌍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는데 실제로 보니 민자씨도 이해가 됐다. 눈물의 잔치가 될 뻔했던 칠순잔치는 어느새 사회자의 입담에 분위기가 바뀌고 노래하며 춤추는 분위기로 바뀌어갔다. 민자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버이날은 지났지만 돌아가신 친정엄마가 생각나면서 갑자기 왜 민자씨 가슴이 답답한 지 알 수가 없었다. 열일곱에 시집와서 5남매 키워놓고서도 그다지 제대로 된 호강 한번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엄마가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엄마 생각만 떠오르면 두 남동생들이 여간 밉지가 않았다. 첫째 동생은 사업이라고 한답시고 멀쩡한 직장 그만 두고 뛰어 들었다가 시골의 땅까지 팔아먹었고 둘째 동생은 엄마 살아생전에 이혼하여 제 자식들 키우지도 못해 엄마가 둘을 키워졌으니 아마도 엄마의 속은 시꺼멓게 타있었을 일이다. 거기다 막내 여동생이 얼굴값 한답시고 대학 다니다 도중에 애 딸린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해서 그때 엄마는 아버지 몰래 두들겨 패기도 하고 달래도 보고 얼마나 속을 썩었는지 모른다. 결국에는 임신까지 해서 동거를 하려고 하는 것을 민자씨가 끼어들어 가까스로 떼어놓았다. 만일 그러지 않았으면 여동생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자신은 두 아들이 아직은 큰 속 썩이지 않고 직장 열심히 다니니 복 받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자식, 그 특별한 관계를 누가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찹찹한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준비하는데 민자씨 입에서 저절로 어머님은혜 노래가 나왔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 아무생각없이 그렇게 노래를 부르는데 언제 들어왔는지 남편이 방안에서 나오면서 말했다. “다 늙어서 새삼스럽게 어머님은혜를 부르는 겨.” “나이 들어 철 드니까 부모 생각 하는 거유. 젊었을 때는 부모 마음이나 알어유. 속이나 썩이지.” “아 우리 오민자 여사가 설마 장모님 속썩였을라구.” “당연하지유. 나야 뭐 큰 속 썩인거 있나유. 동생들이 속 썩였지. 하지만 자식은 자식 이지유. 어디 부모만한 자식이 있겄시유.” “역시 우리 오여사는 속이 깊어. 내가 장가는 잘 들었지.” “왜 그래유. 뜬금없이 칭찬을 다하구.” “사실이잖어. 당신 시집 오기 전에는 돈 벌어 동생들 학비 대주고 시집와서는 큰 며느리 역할 잘 했잖어.” “그럼 뭘 해유. 우리 친정 부모한테 효도 한번 못했는데.” “사람 싱겁기는. 아 딸이 시집가서 애 낳고 문제없이 잘 살았으면 그게 효도한 거지 뭘 그래.” 민자씨 기분을 읽은 건지 남편은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민자씨 친정엄마 생각에 조금 우울하기만 했을 뿐 화를 낼 일은 없었다. 하지만 둘째 아들한테 걸려온 전화 한통은 그녀를 순식간에 성난 사자로 만들었다. 결혼식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둘째 아들의 철없는 생각이 원인이었다. “엄마 4천만원만 더 있으면 1억 2천만원짜리 아파트전세는 얻을 수 있으니까 도와줘요.” “너 지금 사는 원룸도 집에서 3천만원 가져가서 네 돈 천만원 보태 얻은 거잖어. 그런데 또 3천만원을 더해달라구. 아직 그 빚도 다 못갚었어. 니 형은 이놈아 3천만원짜리 반 지하에서 시작했어. 어림도 없는 말 하지도 말어. 그런 돈 있으면 내가 먹고 죽겠다.” “엄마는 요즘 여자들이 반 지하에서 시작 할려고 하냐구요. 미진이는 42평짜리 아파트에서 살던 애여요. 그런데 반 지하에서 어떻게......,” “야-아 우리집으로 시집 않와도 되니까 없던 얘기로 하자구 혀. 아니면 지가 아파트를 이고 오던지. 참 꼴깝을 떤다 니들. 없으면 없는대로 거기에 맞춰 시작해야지. 어디 처음부터 고생 않하구 살려구 혀.” “엄마는 지금은 옛날하고 다르다니까요.” “옛날이구 지랄이구 우리는 그런 돈 없으니까 니가 알아서 혀. 평생 젖소 똥 치워가며 입히고 먹이고 가르쳤으면 됐지. 이 시골에 4천만원이 어디 있다구 돈을 해달라는 겨.” 민자씨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1억2천 만 원 짜리 전세에서 신혼살림을 하겠다는 아들의 생각은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아직도 변두리에 가면 4~5천만원 가지고 방 두 칸 전세는 얻는다고 하는데 억이 넘는 전세를 살겠다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통화내용을 들은 남편은 아무말 없이 한숨만 내쉬었다. “무자식 상팔자라더니. 내가 저 웬수 같은 걸 낳아놓고 이 속을 썩어. 나 참 기가 막히지.” “당신은 왜 그렇게 화부터 내고 그려. 조용조용 말하면 될 일을. 저도 생각이 있으니까 그러겠지.” “아이구 당신은 답답한 소리 하지도 말어유. 1억2천이면 청주에서 40평짜리 아파트 사겄네유. 그것도 고급으로.” “서울이 워낙 비싸다면서. 1억이 넘는 건 좀 그렇구. 연립이나 빌라는 그렇게 안할텐데” “아이구 나는 몰라유. 결혼을 하던지 말던지. 저놈 말대로 4천만원 해주려면 집에 있는 젖소 다 팔아야 된다구유. 미친놈. 여태 고생해서 먹이구 가르쳐놓았더니 이젠 아주 기둥뿌리를 뽑을 작정이구먼.” “그만 혀. 대출을 받아서라두 2천 만 원 정도는 해줘야지. 어쩌겠어.” “아이구 몰라유 나는. 내일 모레 폐물하구 한복하구 맞추러 간다는데 나는 모르는 척할거유. 우선 지 돈으로 하게 내버려둬유. 그것도 한 이백은 들어갈텐데.” “이백 만원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구 하던데 뭐. 그리고 지가 무슨 돈이 있어 월급쟁이가.....,” “여하튼 내버려둬유. 저것들 고생 좀 해봐야돼유. 철이 없기로서니 어디 ....., 당신 그리구 내일 농협 신용카드 좀 줘유. 읍네 마트에서 그걸루 물건 사면 무이자 할부라던데. 저놈의 전기밥솥이 고장이 나서 하나 사와야 돼유.” “으 - 응 신용카드. 그냥 돈 주고 사지 그려.” 순간 민자씨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는 신용카드 주면서 옷이라도 사 입으라고 하더니 갑자기 현금으로 물건을 사라는 거 아닌가? “신용카드 많이 썼어유. 아니면 왜 굳이 현금으로 사라구 해유. 무이자 할부인데.” 남편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양 갑자기 말이 없었다. “내일 아침 일찍 갔다올테니 지금 내놔유 카드.” 남편은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민자씨 혈압을 올렸다. “저기 그러니까 말여. 지난 주말 둘째 내려왔을 때 폐물이니 뭐니 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고 해서 신용카드를 줬는데....., 그래서 .....,” 민자씨 곧장 남편의 핸드폰을 들고 번호를 눌렀다. 아들이 전화를 받았다. 다짜고짜 민자씨 이렇게 말했다. “너 아버지 신용카드 가져갔다며. 썼어 않썼어.” 아들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썼는데요.” “얼마 썼어.” “어제 시계 반지 목걸이 팔찌 하는데 3백 만 원 썼구요. 내일 한복 맞추는 건 현금서비스 100만원만 받으려구요. 아버지가 5백 만 원 한도 내에서 하라고 했어요.” “뭐야. 5 -백 -만 - 원?” 그날 저녁 민자씨 남편과 한참을 싸우고 나서 이튿날 새벽 같이 둘째아들을 만나러 서울로 올라갔다. 아들에게서 신용카드를 빼앗았다. 설마 현금서비스는 아직 받지 않았거니 했다. 하지만 아들이 하는 말이 그야말로 민자씨 뒤통수를 후려쳤다. “현금 서비스 2백만원은 미리 받아서 제 통장에 넣었는데요.” <필자연락처 : 019-609-9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