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시방 나하고 장난하는 거유 글｜박창수 그림｜성주삼 “겨울도 겨울 답지 않게 가네 그려. 아무리 입춘이 지났다지만 그래도 그렇지 뭔 날이 이렇게 푹하댜. 참말로 낼 모레면 개나리꽃 피게 생겼어” “아이구 아줌니는 텔레비전서 못봤시유. 어제 보니까 저기 남쪽에는 꽃이 흐드러지게 폈던데유. 그나저나 아줌니한테 장 담그는 비법이나 좀 배워야 되겄네유. 워째 내가 담그면 손맛이 없는지 맛이 안나더라구유” “아녀. 영식이네 간장, 된장 다 맛있더구먼 . 우리는 우리 큰애, 시누이 둘, 여동생, 남동생, 우리집 이렇게 여섯집이나 먹으니 해마다 담근다니까. 장은 좀 묵어야 맛이 좋은데. 그래두 맛있다구 난리들이니 않줄수도 없구. 에구 내 팔자야. 낼모레면 환갑인데, 허구헌날 내손으로 다 해다 바쳐야 되니. 쯧쯔” “아이구. 아줌니두. 내가 보기에는 아줌니가 더 퍼 줄라구 하더구먼유. 뭐여. 지난 가을에두 시누이들이 맛있다니까 한 보따리씩 퍼주시면서. 근데 그 시누들 돈을 주고서 가져가유. 사실 따지고 보면 아줌니가 담근 장은 돈 주고도 못 사먹는 건데” “그런 말 말어. 형제간에 돈을 어떻게 받어. 저번에 큰 애 내려올 때 작은 시누이는 우리 그이와 내 내복 한 벌, 큰 시누이는 내 옷 한 벌 사서 내려 보냈잖어. 되레 내가 미안 하더라니깐.” 아직 나이 사십은 안되었지만 영식엄마는 그래도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여자라서 그런지 장을 사다먹지 않고 담아 먹고 있다. 하지만 민자씨의 장맛은 감히 따라갈수가 없었다. 간장과 된장 고추장 다 하나같이 다른 조미료가 필요 없을 만큼 그 맛이 담백하며 감칠맛이 돌았다. 물 좋고 순 우리콩으로 만들면 맛있다고는 하지만 사람 손맛에 따라 달라지는게 음식 아닌가. 대체 민자씨의 손맛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궁금하기만 한 영식엄마는 장 담그기에 여념이 없는 그녀 옆에서 서성이며 귀찮을 만큼 이것저것 따져 물었다. “어쩐지, 그것도 노하우구나 . 3년 이상 지난 소금을 쓰면 맛있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유. 그래서 나는 그냥 깨끗하고 좋은 소금만 썼는데.”“우리는 늘 광에 있는 항아리에 소금을 쟁여 놓잖어. 그리구 메주가 잘 떠야 혀. 메주에서 곰팡이가 제대로 생겨야 맛이 있지. 읍네서 사다가 담그면 맛 없어. 직접 집에서 내 손으로 메주 만들어서 사용하는 게 좋지” “올해는 저두 메주를 직접 만들어봐야 겠네유. 아줌니네 하는 날 같이 해야지 배우지. 그때 꼭 알려주셔유. 근데 며칠 전 읍네서 들었는데유 서울 사람들이 내려와서 간장하구 된장을 사갔데유 글쎄. 값도 후하게 쳐주었대유. 아줌니는 솜씨 좋으니까 올해는 메주 많이 만들어서 내년에 간장을 많이 담그셔유. 우리 친구가 서울 사는데 시골 된장 간장은 아파트 부녀회에 얘기하면 너두나두 할 것없이 서로 사가려구 한다더라구유. 이렇게 큰 항아리에서 간장이 한 5년만 묶으면유 아마 사오백만원은 충분히 받아낼거유” “영식엄마도 참. 누가 그렇게 큰 돈을 주고 사가겠어. 그렇게만 벌 수 있다면 해마다 항아리 서너개씩은 장을 담가놓겠네” “아이구 아줌니는 진짜라니까유. 저번에 텔레비전 나온 것 못봤시유. 유명한 음식점이나 호텔에서는 비싸더라도 묵은 간장을 사용한데유. 음식맛이 다르다더라구유. 아마 십년, 이십년씩 묵은 간장 있으면 돈 싸들고 내려올걸유” 영식엄마 말은 맞는 말이었다. 장을 담그고 한 이틀이나 지났을까. 작은 시누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는데 얘기인즉 이제는 나이 들어 목장도 쉽지 않을텐데 물좋고 공기좋고 집 넓은데다 넓은 밭도 있으니 이제는 목장 그만두고 메주 콩 심어서 해마다 우리콩 수확하여 간장 된장 고추장을 담그면 앞으로는 큰 돈이 될거라는 거였다. 요즘 도시사람들 웰빙 추구하느라 우리 먹거리는 값이 배가 되더라도 사먹는 추세인데다 간장, 된장, 고추장 맛은 아무리 사먹는게 맛있어도 시골에서 담은 것과는 비교가 안된다는 거였다. 판로는 걱정을 하지않아도 된다고 했다. 소문만 나면 장사꾼들이 서로 달려들 터이니 일단 많이만 담그라고 했다. 작은 시누이 역시, 시집간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해마다 그녀가 만들어주는 간장, 된장, 고추장을 갔다 먹으면서 늘 맛있다고 극찬을 해오던 터였다. 이쯤되면 민자씨 마음도 흔들리기 마련이다. 사실 콩 농사는 손이 거의 가지 않는데다 장담그는 일이야 옛날부터 몇 십 년을 해오던 일이니 가을에 메주 쑤고 봄에 장 담그는 식으로 하면 나머지 시간은 그냥 놀고 먹는 것이니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남편이었다. 내년이면 환갑이 되는 나이지만 아직도 건강한데다 지금 하는걸 봐서는 칠십 넘어도 젖소 키우는 일은 손에서 놓지 않을것만 같았다. 이미 35년간 해온 일인데 쉽게 그만둘 리가 없었다. 하지만 여자마음은 갈대라고 하지 않았던가. 민자씨 영식엄마와 시누이의 말을 듣고 난 후로 가슴이 설레이기만 했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일인데다 시골에서 하는 사업으로는 더할나위없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무엇이든 혼자 가슴속에 안고 사는 성격이 못되는 민자씨는 참다참다 결국에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하루는 저녁을 먹은 후 텔레비젼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저기 있잖어유. 우리도 나이 들고 해서 말인데 이제는 목장 그만두는 게 좋지않겠어유. 힘만 들고 예전처럼 큰 돈도 안되는데” “허- 허 뜬굼없이 뭔 말을 하는겨 지금. 목장 않하면 뭐 먹고 살 거여. 서울로 올라가 애들한테 눈칫밥 얻어먹고 살거여” 남편은 어이가 없다는 듯 소리를 높혀가면서 말했다. 하지만 이왕 꺼낸 말이니 속시원하게 털어놓기로 한 민자씨는 말을 이어갔다. “아 목장 안한다구 산 입에 거미줄 치겄시유. 그 뭐여. 작은 고모가 하는 말처럼 간장, 된장 담그어서 도시 사람들에게 팔면 꽤 짭짤하다고 하던데유” 남편은 기가 막힌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봐. 간장, 된장 장사는 아무나 하는 줄 알아. 벌써 발 빠른 놈들이 항아리 몇 백개씩 장 다가서 팔아먹고 있다구. 어슬프게 흉내 내다가는 죽도 밥도 안된다구. 옛말이 틀리게 없어. 뱁새가 황새 쫏다가는 가랑이 찢어진다구” 민자씨 듣고 보니 남편의 말은 자신을 무시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은근슬쩍 화가 나기 시작했다. “얼레. 나 참말로 기가 막히네유. 말이면 다 말인 줄 알어유. 나는 간장, 된장 만들어 팔면 안된다는 법 있시유. 당신은 평생 젖소만 키우다 살어유. 난 내방식대로 할라니까” 이번에는 남편도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말싸움을 이어갔다. “그려 나는 죽는 날까지 저것들 키우며 살거여. 나이들어 힘들면 큰 놈 내려오라고 해서라도 목장 문 닫는 일은 없을테니까 그런 줄 알어. 사람이 말여. 장인정신이 있어야지. 돈 된다 싶으면 이것도 하고 싶구 저것도 하구 싶구. 사람 마음이 그렇게 간사하면 못 쓰는 법여” “그려유. 나 간사한 년이유. 살다보니 별말을 다 듣네.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알어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민자씨 곧장 수화기를 들어 읍네 소금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유. 여기 마동목장인디유. 내일 아침에 천일염 20자루만 갔다줘유. 알었지유.” 일을 저질러도 화끈하게 저지르겠다는 거였다. 소금 이십 자루면 간장을 항아리 열개는 담그겠다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홧김에 그녀는 작은방으로 가서 잠을 잤다. 나이들어 같이 잔다고해서 날마다 뭔일 있는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남편의 얼굴조차 보기싫었다. 이튿날 아침 어김없이 소금차가 왔다. 민자씨 남편이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저 광에다 쌓아 주세유. 스무 자루 맞지유?”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트럭에 싣고 온 소금은 겨우 두 자루였다. 어떻게된 일일까? 그때 안방에서 남편이 나오면서 하는 말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나머지 열 여덟 자루는 며칠 있다 갖고 오라고 했어. 창고에 사료가 쌓여있어서 소금자루 놓을 공간이 없거든” 민자씨 머리가 망치로 한대 얻어맞은 듯 ‘띵’하며 잠시 어지러웠다. 그리고 빈 트럭을 쳐다보고 있던 그녀의 입에서 이런 말이 큰소리로 터져 나왔다. “당신, 시방 나하고 장난하는 거유” 더 웃기는 일은 민자씨의 이 말에 놀란 것은 남편이 아니라 트럭운전사였다. <필자연락처 : 019-609-9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