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몰라도 돼유 글｜박창수 그림｜성주삼 겨울이니 남편을 도와 축사 청소하는 것 외에는 크게 할일이 없는 민자씨는 손자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재료비가 5만원이 넘게 들고 시간이 자그마치 20여일이나 걸렸다. 다름 아닌 손 뜨게 반코트였다. 노란색실 60%, 검은색 실 10%, 주황색 실 30%로 구성한 모자까지 달린 반코트는 누가 봐도 예술작품에 가까웠다. 민자씨 처녀시절에 배운 손뜨게질을 아이들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꾸준히 겨울철 취미생활로 즐겼지만 언제부터인가 관심은 커녕 아예 뜨게질 대바늘도 잡지 않았다. 그렇게 어언 15년 정도는 뜨개질을 하지 않았는데도 왕년의 실력이 그대로 재현된 것에 자신 스스로도 놀라웠다. 남편은 손자녀석 줄 반코트를 이리 보고 저리 보면서 마치 손뜨게질로 만든 옷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신기해 했다. “아이구 뭘 그렇게 자꾸 봐유. 뜨게질한 것 처음 봐유” “당신 솜씨가 워낙 좋아서 감탄하는 겨. 저기 축협 김차장도 마누라가 떠 준 거. 그 뭐여 니트라고 하는 건가, 그거 입고 있더구먼. 그거에 비하면 이건 예술이구먼” “왜 당신도 하나 떠 줘유. 아이구 요즘은 나이 들어 눈도 침침하구 힘들어유. 우리 경준이 거니까 억지로 만들었지. 애들 줄 거면 뜨지도 않았어유. 당신이 뭐 꼭 입고 싶으시다면 만들어 줄께유” “아이구 됐어. 이 사람아. 그거 떠주구 날마다 공치사 들으라구. 됐구먼. 애들이 사온 옷도 있는데 뭐” “에구 나이 들어두 젊어지고 싶고 멋내고 싶은 건 다 한 가지겄지유. 나도 젊은애들 보면 가끔씩은 처녀시절 입던 청바지나 미니스커트가 그리워지는걸유” “에잇 이 사람이. 50대 후반에 청바지는 몰라두 미니스커트는 남사스럽게. 쯧 - 쯧” “하하하하- 그냥 해본 소리여유” 민자씨 자신이 말해놓고서도 무안해서 갑자기 얼굴이 닳아 올랐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이 들수록 누군가 옆에 있어야 된다는 말이 새삼 새롭게 느껴졌다. 젊었을때 처럼 밤이면 밤마다 한 이불 덥고 끌어안고 자는 일은 없지만 그래도 농담이라도 주고 받을 수 있는 남편이 있다는 것. 그리고 혼자가 아닌 둘이라는 것이 여간 훈훈하게 느껴지는 게 아니었다. 언젠가 읍네 동갑계원인 미장원 여자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과부댁들은 40대만 되어도 허구헌날 여기저기 아프다고 난리야. 왜 그런줄 알어. 남자 정기를 못 받아서 그런 겨.’ 그 당시에는 다들 깔깔대며 웃었지만 민자씨 나이가 들어가면서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 이혼했거나 사별하고 혼자 사는 친구들이 유난히 아프다는 소리를 자주하는 것 같았다. 민자씨는 남편, 아들, 며느리, 손자 다 있는 자신이야말로 행복한 여자라는 생각을 했다. 이튿날 아침 일찍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서울로 올라온 민자씨가 아들네 아파트에 도착한 것은 오전 열한시. 10여년을 입어서 색이 조금 바랜데다 어느새 소매 깃이 닳아버린 코트는 따뜻하기가 예전 같지 않았다. 날씨가 춥기도 했지만 유난히 소매 깃을 타고 들어오는 한기에 민자씨 몸을 떨면서 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제 다섯 살 된 손자 경준이는 민자씨가 들어서자 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할머니 크리스마스 선물 주세요”라고 했다. 쇼파에 앉아 몸을 녹일 여유조차 없이 경준이 녀석의 재촉에 손자를 위해 떠 온 뜨개질 작품을 펼쳐놓았다. 손자 녀석도 좋아서 입이 함지박 만 해졌지만 정작 더 좋아하는 것은 며느리였다. “어머니. 너무 예뻐요. 저는 뜨개질을 못해서 예쁘게 떠서 파는 것 보면 하나 사주고 싶다가도 너무 비싸서 엄두도 못냈는데..., 어머 우리 경준이 할머니 때문에 정말 멋쟁이 되겠네” 손자라서 다 통하는 게 있어서 그럴까. 입혀놓으니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 크기도 아주 적당해서 마치 텔레비전 나오는 꼬마모델이 따로 없을 정도로 눈부셨다. 며느리는 좋아서 연신 굽신거리며 “어머님 감사 합니다” 는 말을 되풀이했다. 모처럼만에 며느리가 해준 점심을 먹고 민자씨는 집에 내려갈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내려 갈 거라고 했더니 아들이 잠깐 들리겠다면서 자신이 오기 전에는 가지 말라고 했던 터라 민자씨 은근히 뭐 갖고 내려 갈 거라도 사오는가 싶어 목 빠지게 아들을 기다렸다. 물론 아들 얼굴 한번 보는 것 만으로도 마음 넉넉해지는 게 부모 마음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자식들이 뭐라도 사주면 마음은 더욱 뿌듯하고 행복했다. 하지만 시골에서 올라온 엄마를 보려고 왔다는 아들은 피자 한판 달랑 들고 들어와 펼쳐놓았다. 원래 착하기만 할뿐 주변머리가 없는 아들은 민자씨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피자를 사온 것이 아닌가? 며느리는 벌써 눈치를 챘는지 아들에게 한마디 던졌다. “경준이 아빠. 피자를 사오면 어떻게해요. 어머님은 치킨이나 만두 같은 것 좋아하시잖아요. 어휴 저이는 진짜 ......,” “나는 그냥 경준이도 먹고 엄마도 먹고 자기도 먹고 그러라고 피자를 샀지. 엄마 피자 싫어해요. 맛있어요. 한쪽 잡수셔요” 분위기가 자칫하면 자신 때문에 부부싸움 일어날 것 같아 민자씨 걱정 말라며 피자 한 조각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손자 녀석은 어찌나 피자를 좋아하는지 여덟 조각 중 넷 조각을 다 제 앞으로 가져가며 욕심을 냈다. 피자 한 조각을 모래 씹듯 억지로 먹고 민자씨는 늦기 전에 가야 된다며 서둘러 일어났다. 그러자 아들은 자신이 터미널까지 모셔다드린다면서 앞장섰다. 장가 가기 전에는 남편보다도 아들을 더 쳐다보며 살았는데 장가를 보내고 나서는 제 마누라와 아들만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서먹서먹해지고 서운함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내 배 아파서 난 자식이니 조금 서운할 때가 있어도 늘 아들을 향한 민자씨 마음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아들로부터 들은 말 한마디가 그녀에게는 아픔으로 다가왔다. 터미널에 내려서 표를 끊어 손에 쥐어주면서 아들은 그랬다. “엄마는 이게 언제 입던 코트여요. 요즘은 두툼하면서도 가벼운 옷들 많은데 새 옷 하나 사 입어요. 추운데 떨지말구.” 사주지도 않을 거면 차라리 말이나 꺼내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아들은 그나마 엄마 생각한다고 한 말인데 민자씨는 여간 서운한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식한테 옷사달라고 하는 철없는 애미가 어디 있겠는가. 민자씨는 억지로 웃으면서 걱정 말라는 말을 남기고 버스를 탔다. 품안의 자식이라는 말이 따로 없다는 생각과 함께 민자씨의 서운함은 커져만 갔다. 자신은 밤잠도 설쳐가며 손자 녀석 반코트 만들어다 바쳤는데 아들 녀석은 옷 사 입으라고 돈을 주기는커녕 먹는 것까지 제 자식 입맛만 챙겼다는 사실이 그녀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읍내에 도착하자마자 마중나온다던 남편이 않보이자 그녀는 수예점으로 가서 털실을 세 뭉치를 샀다. 그리고 다시 터미널로 돌아오자 남편은 화가 난 듯 말했다. “아니 어디 갔다 오는 겨. 나는 삼십분 넘게 떨며 기다렸구먼” 하지만 그녀가 차에서 내릴 때 남편은 분명 보이지 않았었다. 아들 때문에 서운한 민자씨의 속도 말이 아니었으니 마찬가지로 퉁명스럽게 쏘아부쳤다. “아까 않보이던데유. 당신은 늦게 나온 거 아녀유 . 참말로. 그려서 잠깐 어디 좀 갔다왔구먼유” “아니 날도 추운데 사람이 안보이니 걱정이 돼서 그러지. 그나저나 어딜 갔다 온겨.” 민자씨 아들에게서 받은 화를 남편에게 풀어 던졌다. “아 당신은 몰라도 돼유. 빨리 차 시동이나 걸어유” 사실 남자가 여자의 그 깊은 모성애와 나이든 엄마에 대한 아들들의 배신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날 밤 민자씨 잠을 못 이룰 만큼 아들에 대한 서운함을 곱씹었다. 그러면서 다짐했다. 앞으로는 자식 손자보다도 남편에게 잘해줘야겠다고. 털실을 사온 것도 남편의 스웨터를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었으니 알고 보면 우리의 오민자 여사 꽤 괜찮은 여자 아닌가? <필자연락처 : 019-609-9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