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년! 그렇게 갈 거면 투기는 뭣 땜에 한 겨 글｜박창수 그림｜성주삼 “미치지 않고는 저럴수가 없는 겨. 평당 3천만 원이 넘는다구. 기가 막혀. 기가 막혀” “당신은 왜 스트레스를 받구 그려. 우리하구는 상관없는 일이잖어.” “아니 왜 상관이 없시유. 작은 애는 아직 집도 없잖아유. 이럴 줄 알았으면 작년에 집 산다고 할 때 돈이라도 좀 보태줄걸. 더 있다가 사라구 말린 내가 잘못이라구유. 아이구 답답혀” “당신도 투기하구 싶어. 저것들은 다 사기꾼 도둑놈들이니까 그저 그러려니 내버려둬. 언젠가는 쪽박 차고 나뒹구는 놈들 여럿 나올테니까 ” “아이구 몰라유. 속상해 죽겄네. 집값이 저렇게 비싸면 젊은 사람들 내집 갖는 건 이젠 꿈이라구유. 꿈.” “어허 이 사람은. 좀 더 두고 보라니까. 일본도 저러다 거품 꺼지고 다 망했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니까. 아 뉴욕 집값보다도 더 비싸다는데. 저게 정상이야. 미친놈들이 도깨비장난 하는 거지” 날은 추워지는데 아파트 값은 날이 갈수록 오른다고 하니 집 없는 사람들은 얼마나 서글플까 하는 생각이 민자씨 가슴을 파고 들었다. 이럴 땐 촌에 산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를 몰랐다. 적어도 촌에서는 상대적 빈곤감 같은 것은 안가져도 되니까 말이다. 집 한 채에 10억, 20억도 모자라 30억이 넘는다니 참으로 이해가 안되는 일이었다. 아파트를 금으로 지은 것도 아닌데 30억이라는 금액이 말이 되는가 싶었다. 1억 만들기도 힘든 마당에 아무리 작은 평수도 5~6억은 가져야 살 수 있다니 대한민국 참으로 ‘웃기는 나라’ 라는 생각만 밀려왔다. 민자씨네 목장 땅이 넓긴 하지만 시가로 따지면 10억은 커녕 5~6억만 나가도 ‘할아버지’할 판인데, 17평짜리 재개발 아파트가 6억이 나간다니 민자씨 같은 시골 아줌마로서는 머리 뚜껑이 열리는 일이다. 형식 엄마도 점심 때 잠깐 놀러 와서는 푸념을 늘어놓고 갔다. 8년 전에 이곳으로 내려오지 않고 가락동 그 집만 안 팔고 갖고 있었어도 지금 7~8억은 거뜬히 손에 쥘 수 있는데 남편 따라 귀농을 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헛장사했다는 거였다. 땅이 늘어난 것도 아니고 약초 재배하여 팔아야 1년에 돈 천 만원 저축하면 아주 잘하는 것이고 거의 본전치기만 했던 해가 많았기 때문이다. 민자씨 입에서는 한숨이 나왔다. 집값이 분수없이 오르니 젊은 사람들이 땀흘려 일하려고 하겠는가. 풍선 같은 희망을 같고 땅 투기 하는 법이나 배우려고 하는 게 아닌가. 언젠가 둘째 아들 얘기를 들으니 서울 강남에는 부동산 컨설팅회사에 들어가 어떻게 하면 한탕 할까하는 생각으로 직장생활을 하는 새파랗게 젊은이들이 무척 많다고 한다. 이미 이놈의 미친 세상이 사람까지 망쳐놓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런 판국에 어떤 젊은이가 농촌에서 농사짓고 가축 키우려 하겠는가 싶었다. 이런 민자씨의 심정에 다시 불을 붙이는 사람이 있었다. 다름 아닌 여고 동창생으로 동창회장을 맡고 있는 영순씨였다. “어머. 야! 오민자 오랜만이야. 너 작년에도 동창회 않나왔지. 그래도 니가 니네반 반장 아니었니. 다른애들은 몰라도 너는 꼭 나와야지. 너 뭐 목장 한다며. 어휴 기집애 좋겠다. 낭만적으로 사네” “뭔 놈의 낭만. 공기 좋고 물 좋아서 그냥 살어. 어쩐일여. 동창회 할라구 그러냐” “그래. 이제 곧 12월인데 올해도 한번 만나야지. 나이는 자꾸 들어가고 아쉽잖아. 애들 다 키워놓고 했으니 이젠 만나서 맛있는 것도 먹고 수다도 좀 떨어야 되지 않겠어” “그건 그렇지만. 몇일 날 어디서 만날라구.” “글쎄. 희자하고 얘기 좀 했는데. 우리 동창들 중에 몇이 요번에 돈좀 벌었어. 자기도 알지. 강남 판교 그쪽 동네서 땅 좀 굴린 애들이 있거든. 희자 말로는 이선자라고 왜 S전문대 들어간 애 있었잖아. 그 애가 2차는 기분 좋게 쏜다고 했데. 그러니까 서울서 하는게 어떻겠냐고” “회장 부회장이 알아서 결정할 일이지. 그나 저나 부동산 굴린애들은 돈방석 앉아 있겄구먼. 학교 다닐때는 공부도 못하던 것들이 참. 이젠 머리들도 좋아졌나봐 .....,” 전화를 끊고 나니 민자씨 동창들 중에도 투기꾼들이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민자씨 자신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 나왔다. “미친년들. 쳐 먹고 할 짓이 없으니까 별걸 다하는구먼. 촌년들이 돈맛을 알았나” 민자씨의 기분은 사촌이 땅을 사서 배가 아픈 심정하고는 달랐다. 먹고 살만하면 정상적으로 살아갈 일이거늘 부동산 투기를 하여 땅값, 집값만 올려놓고 사회분위기를 어지럽혀 놓는 인간들은 돈쳐먹고 정치하는 정치인들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거였다. 민자씨는 다짐했다. 동창회는 나가지 않겠다고. 사기 쳐서 번 돈으로 한 턱 낸다는데 그 더러운 돈으로 사주는 것을 먹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동창 중에 그런 인간들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불쾌하고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다시 욕지거리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세상 말세지. 학교 가서는 치맛바람 일으키고 남는 시간에는 부동산 바람 일으키고 정말이지 같은 여자지만 나쁜 개 같은 년들이 나라 말아먹게 생겼어. 국회에 앉아 있는 놈들은 대체 뭐하는 거야. 지들도 집값이 올랐으니 속으로는 좋아서 미치겠구먼 어휴 이 더럽고 쓰레기 같은 것들이 판치는 세상 살아서 뭐하나” 그날 이후 텔레비전에서 부동산 아파트 신도시 뭐 그런 말만 나오면 민자씨는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은 뉴스였다. 차라리 철없는 젊은애들 농담 따먹기 하는 연예프로그램을 보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흘러 동창회장이 알려준 동창회 날이 며칠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한번 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민자씨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고향 친구인 경자가 그날 얼굴이나 보자고 전화가 걸려왔지만 민자씨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무식한 년들 돈 자랑 집 자랑하는 꼴 보기 싫어서 안나갈겨.” 그러자 경자는 그런 애들 신경 쓰지 말고 그래도 친하게 지냈던 동창들끼리라도 얼굴은 보는게 좋지 않겠냐고 했지만 민자씨는 거절했다. “미안혀. 내 성질에 그런 쓰레기 같은 년들 보면 장소 안 가리고 한바탕 하고도 남잖어. 아이구. 야! 나 오래 살고 싶어. 그런 촌년들 만나서 혈압 올리고 싶지 않어” 드디어 동창회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동창회장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민자씨는 속으로 자신이 안나간다는 소리를 들어서 꼭 나오라고 말하려는가 보다 싶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충격적인 소리가 귓전에 와서 부딪쳤다. “어머 이 일을 어쩌면 좋아. 있잖아 박선자. 오늘 아침에 교통사고 나서 죽었어. 서울 ○○병원 장례식장 301호실이야. 어쩌면 좋아. 선자 그애. 남편 일찍 죽고 과부가 되어 애들 키우느라 고생도 말도 못하게 했어. 그러다 몇 해 전 부터 부동산에 손 댓다가 돈 좀 벌더니 그 돈 써보지도 못하고 저렇게 허무하게 갔으니 안됐어. 쯔 - 쯔 . 얘 신랑도 없는 애인데. 바쁘더라도 꼭 올라와. 마지막 가는 길 우리라도 가 줘야지” 전화를 끝고 나서 민자씨 또한 마치 쇠망치로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한마디가 새어 나왔다. “미친년. 그렇게 갈 걸, 부동산 투기는 뭣 땜에 한 겨. 힘들게 자식 키웠으면 말년이나 좀 편하게 살지.” 질투도, 비난도, 원망도 아닌 특별한 민자씨의 심정을 드러내는 말이었다. 찬바람만 쌩쌩 부는 창밖을 한참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떨고 있었다. 그 추위에도 감나무에는 참새 한 마리가 찾아와 시끄럽게 짹짹 거렸다. 어느새 민자씨 눈가에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필자연락처 : 019-609-9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