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냄새 않나지유 글｜박창수 그림｜성주삼 “ 목장댁 나 어쩌면 좋아유. 정말이지 살고 싶은 생각이 없는 거여” 란제리가게 미자 엄마는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읍네 나오면 한번 얼굴 좀 보자는 말에 그냥 인사치례로 말했거니 하고 시장 본 후에 잠시 들렸는데 뭔가 일이 벌어져도 큰 일이 벌어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올 봄에 손자 봤다고 좋아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갑자기 왜 그려유. 마음 제일 편한 사람인줄 알었는데 뭔일이래유” “아이구 그런 말 말어유. 60평생 자식만 보구 살았는디 인제는 자식 놈이 날 버리네” 미자 엄마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 거렸다. 시집와서 남매 낳고 살다가 아들이 일곱 살 되던 해 남편은 전기공사 하다가 감전으로 어느 날 갑자기 죽어버린 거였다. 그 후로 친정동네로 내려와 란제리 가게를 운영하면서 애들 키우며 살아온 게 어언 25년이 흘러간 거였다. 힘들게 살아왔지만 미자 엄마는 성격이 좋아서 동갑계원들 중에서도 매사에 긍정적으로 사는 여자로 소문나 있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세상 다 산 사람처럼 다 죽어가는 표정을 하고 눈물까지 쏟고 있으니 민자씨 로서는 난감하기만 했다. “무슨일여 대체. 미자 엄마 말 좀 해봐유.” “아이구 남부끄러워서 말하기도 그렇네. 세상에 글쎄 그놈이 여태 한마디 없다가 다음달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네유. 근데 서운하잖어. 작년부터 준비했다면서 워째 여태 말 않하구 있었냐구유. 기가 막혀. 그 여시 같은 년한테 홀랑 넘어가 장가들더니 이제는 지 애미는 안중에도 없는 겨. 푸-우 -” 듣고 보니 놀랍기는 했다. 청상과부로 자식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짚신 짝 버리듯 자기 엄마 버리고 이민을 가는 것두 그렇구. 처음부터 같이 갈 생각이 없었으면 미리 얘기라도 흘렸어야 하는 것 아닌가? 민자씨 생각을 해보니 신랑 있는 자신이라 할지라도 아들이 그렇게 했다면 가만히 못 있을 일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구먼. 아니 성식이가 그런 애가 아닌 줄 알았는데. 참말로 이상한 일이네” “아이구 챙피스러운 일여. 이 싸가지 없는 것들. 낮 짝 뻔뻔하지. 글쎄 그 여시 같은 년이 한다는 말이 터미널에 있는 3층 상가 팔아달라고 할 생각은 없는데 현금 이천만원만 해달라는 거여. 아니 기가 막혀서. 목장댁 자기 같으면 해주겠어” “얼래. 진짜여. 그 며느리 참 못됐네. 지들 잘 살아 보자구 홀어머니 두고 떠나면서 뭔놈의 재산타령? 그 건물 사는데 지들이 돈벌어 보탰어. 아이구야. 나이도 어린 것이 대단하네” “엊그제 아들놈이 내려와서 그러더라니까. 홧김에 올라가서 이 년 머리채를 잡고 싶었지만 내가 참었시유. 그래 부모 자식 인연 억지로 끊을 수는 없으니 인연 끊자는 말을 않하구 니들 끼리 잘 가서 잘살아 보라구 하구 말았어유. 오늘은 미자가 가서 지 오래비한테 한 판 했나보더라구. 아이구. 난 애초부터 저한테 기댈 생각 없었지만 이젠 정이 뚝 떨어진다구유 . 아이구 내 팔자야. 먹을 것 못먹구 자식새끼 대학까지 졸업시켜 장가보냈더니. 기가 막혀. 내가 그런 놈을 믿고 살았으니. 흑 흑 흑. 아이구 억울해 못살어. 이럴줄 알았으면 다른 년들처럼 일찌감치 팔자나 고칠 걸 . 흑 흑 흑 . 아이구 엄니 흑흑흑” 미자 엄마는 대성통곡을 했다. 말을 하다보니 서러움과 억울함이 더 복받쳤는지 울음소리는 커져만 같다. 남의 자식 욕을 자꾸 할 수도 없었고 마땅히 위로할말도 없었다. 민자씨는 안되겠다 싶어 수퍼댁을 불러냈다. 그리고 셋이서 꼬치를 파는 호프집으로 갔다. 맥주 한잔이면 얼굴이 홍당무가 되는 그녀였지만 동갑계 친구가 이런 처지인 걸 그냥 보고만 갈수는 없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조금이라도 위로라도 해주는 게 도리이다 싶었다. 꼬치구이를 시키고 호프 잔을 든 세 여자는 다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수퍼댁은 오히려 위로 대신 좀 다른 방법으로 미자 엄마를 달랬다. “아니 자기는 돈이 없어. 미모가 딸려. 아직도 안 늦었어. 빨리 좋은 남자 만나 살어. 미자 시집가던 해가 언제야. 내가 그때부터 얘기를 했어. 그런데도 말을 않듣더니만. 다 소용없는 거야. 자식새끼들 다 키워 시집장가 보내면 그때는 부모가 돈이라도 있어야 달라붙는 시늉이라도 하지 그렇지 않고서는 다 지들 살고 싶은대로 지들 생각만 해. 아직 안늦었으니까 생각 바꿔. 오히려 나이 들수록 등 긁어 주는 서방이라도 있어야 된다두” 미자 엄마는 여전히 아들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화가 가라앉지 않은 상황이었다. “저것들 미국 들어가면 건물 팔고 집 팔아서 실버타운 들어갈 돈만 남기고 미자 다 줘야겄어. 나 죽으면 제사나 지내주겠냐구. 나 참” 수퍼댁은 이참에 재혼할 생각을 하도록 더 강하게 밀어 부쳤다. “어휴. 미자 엄마. 앞으로 우리 20년 이상은 산다구. 여태 자식들 땜에 고생했으면 이젠 좋은 남자 만나서 여행도 하고 손 붙잡고 등산도 다니고 하면서 남은 인생 즐겁게 살아. 요즘 남자들 50대 중후반이면 젊은 사람 못지않아. 얼마나 건강하고 멋쟁이라구.” 수퍼댁은 워낙 술을 잘 마셨고 미자엄마는 못 마시는 술을 홧김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두 사람이 한잔씩 비울동안 민자씨는 반잔을 못 비웠다. 대신 열심히 꼬치를 먹었다. 그녀는 닭꼬치 보다 마늘 꼬치를 좋아했다. 구운 마늘은 달콤하면서도 밤처럼 맛있었다. 그러자 수퍼댁은 민자씨를 끌어들였다. “어휴 하여튼 얼굴 예쁜 여자들은 저런다니까. 술 마셔 아직도 반잔여. 아니 그 많은 꼬치중에 마늘만 그렇게 먹는 거야. 피부 좋아지라고 그러는 거지. 하여튼. 미자 엄마 목장댁 좀 보라구. 그래도 신랑하고 둘이 사니까 저렇게 얼굴이 펴 있잖아. 이제는 내 말 지나가는 얘기로 듣지 말라구. 사람은 살 냄새 맡으며 서로 살 부비고 살아야지 덜 늙고 오래 산다잖아. 우리 신랑 친구 중에 괜찮은 사람 있어. 경찰인데 마누라가 암으로 3년 전에 죽었는데 재혼을 그렇게 하고 싶어하더라구. 기다려봐 내가 다리 놓을 테니까” 수퍼댁 말을 듣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니 민자씨 생각도 같았다. 살아있는 동안 하고 싶은 것 하고 즐겁게 사는 것이 현명한 일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도 한마디 거들었다. “수퍼댁 말이 맞는 것 같구먼. 나이 들었어도 자기 할 일 있고 딸린 자식 없는 사람이라면 재혼하여 둘이서 즐겁게 사는 것도 좋은 일이지. 돈이나 자식은 아무리 많아도 소용 없다구유. 미자 엄마도 재혼 한번 생각해 봐유” 그날 민자씨는 겨우 호프 한잔을 마셨는데 이미 몸이 풀려서 비틀거리기 직전의 상황까지 간 것이다. 하는 수없이 남편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데리러 나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날은 저물어 가는데 저녁해줄 마누라가 호프 한잔 마시고 취해 집에 갈수 없다고 하는데도 아무 말 없이 차 끌고 나와서 태워 가는 남편을 보면서 민자씨는 역시 자식보다는 남편이 믿을만하다는 생각을 하고 또 했다. 집에 도착해서 정신없이 저녁상을 차리고 있는데 남편은 식탁에 앉아서 며칠 전 우유 차 기사가 놓고 간 착유기 광고 팜플렛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 머리는 희끗희끗하지만 몸도 건강하구 늘 말없이 자기 할일 잘 하며 그야말로 선이 굵직한 남자다운 신랑을 보자니 민자씨 갑자기 돌발 상황을 만드는 게 아닌가? 남편의 볼에 입을 갔다대며 ‘쪼 -옥’ 소리를 내고는 “고마워유. 나 하구 살아줘서” 라고 말했다. 민자씨 아무래도 술이 덜 깨어서 이런 행동을 한 것 같은데 남편의 반응은 의외였다. “어휴 냄새. 뭘 먹었길래 마늘 냄새가 이렇게 진동을 하는 겨” 장난스러운 애교였지만 남편의 썰렁한 반응에 민자씨 기분이 땅으로 떨어지는 게 아닌가. 그렇다고 이쯤에서 포기할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컵에 가득 따라서 마치 술 마시듯 들이켰다. 그리고 2차도전이 시작됐다. 그녀는 남편 옆으로 다가가 이번에는 입에 대고 뽀뽀를 했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다. “이번에는 냄새 않나지유” 정말 놀란 남편은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면서 고개만 끄덕였다. 우유 때문에 마늘 냄새가 나지 않았던 거였다. 50대부부의 뽀뽀는 그야말로 예사롭지않은 일. 그리고 그날 밤 부부는 여름 내내 덥고 모기가 많아서 못 치룬 거사(?)를 화끈하게 치뤘단다. <필자연락처 : 019-609-9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