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인지, 쪽박인지 글｜박창수 그림｜성주삼 “목장 댁, 어쩌면 좋니? 자기네 옆집 사는 젊은 아저씨 있잖아” 읍네 고기 집 여자는 늘 전화를 걸면 서론이 길었다. 게다가 큰일도 아닌데 마치 난리라도 난 것처럼 사람을 긴장시키고 흥분시키곤 했다. 이날도 텃밭에서 열무를 뽑아서 막 들어오는데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고 바로 그 여자였다. “아 그려 . 영식아버지. 뜬굼 없이 영식아버지는 왜 찾어.” 언젠가 영식아버지를 보고 인물 좋다고 수다를 떨던 생각이 나서 민자씨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글쎄, 그 아저씨가 우리 신랑하고 잘 아는 사이 인가봐. 우리 신랑이 그러는데 그 아저씨 거기 다닌다고 하더라구.” “거기가 어디여. 갑자기 남의 집 신랑이 어딜 다닌다구 그려. 영식아버지 그런 사람 아녀. 인물은 좋아도 바람 피구 다니는 그런 사람은 아닌데” 아니나 다를까 이쯤 되자 고기 집 여자는 구체적으로 말을 털어놓았다. “어머 자기는 내가 언제 바람피운다구 했나. 내 얘기는 ‘대박이야기’ 거기 다닌다구. 며칠전에 갑자기 우리 신랑한테 30만원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 줬더니 글쎄 거기로 들어가더래. 나는 십 만원이 걱정 되어서가 아니라 애기 엄마가 모를 것 같아서, 그리구 농사짓는 아저씨가 그런데 다니는 게 좀 안스러워서” 민자씨는 들어도 무슨 말인지를 몰랐다. “대박이야기는 뭐여 . 거기가 뭐하는 곳인디.” “진짜. 아니 자기는 그것도 몰라. 빠찡코 그런 거야. 도 - 박” 민자씨는 귀를 의심했다. 몇 년 동안 형식아빠를 지켜보았지만 젊은 사람치고는 꽤 예의도 있고 외모가 훤칠한데도 한 눈 파는 법 없고 늘 약초재배에만 노력을 쏟아붓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도박이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형식이네와 피를 나눈 형제지간은 아닐지라도 아래 윗 집 형님 동생하며 산 지가 7년이 넘었으니 어찌 보면 형제 못지않은 사이였다. 그런데 고기 집 여자는 말은 걱정이 되어서 알려주는 거라고 하면서도 마치 비아냥거리는듯 한 말투였다. 민자씨 은근히 짜증이 났다. “저기,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한테는 얘기 하지 말어. 사실인지 알아봐야겠지만 형식아빠 그런 사람 아니라구. 눈으로 직접 확인한 거 아니고서는 ....,” 고기 집 여자와 전화를 끊고 나서 열무를 다듬던 민자씨는 뭔가 불안하고 갑갑해서 가만히 있기가 힘들었다. 형식 엄마는 전혀 모르는 일 일테니 대뜸 얘기를 전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구 형식아빠 돈 갔다 잃는 걸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고민을 하다가 일단 기다려보기로 민자씨. 남편을 도와서 축사 일을 거들고 나서 저녁을 먹는데 TV뉴스에서 ‘대박이야기’가 나오는 거였다. 불법으로 운영하는 곳이 많은데다 정치인들이 뇌물을 먹었고 상품권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큰 일 터진듯 아나운서는 목청을 높혀 말했다. 순간 민자씨 밥이 넘어가질 않았다. 그녀는 곧장 영식이네 집으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영식아빠가 집에 없었다. “아니 영식 아빠는 어디 갔어” “예. 요즘 저녁때면 읍네에 자주 나가네유. 농촌지도소 영농계장 만나서 송이버섯재배 하는 거 얘기 좀 듣는다구유. 나는 버섯은 안했으면 좋겠는데.” 영식엄마 말하는 것을 보니 고기 집 여자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누라에게는 일 때문에 나간다고 하고 오락실에 들어가는 것 쯤이야 이미 도박에 빠진 사람이라면 식은 죽 먹듯 쉬운 거짓말 아닌가. “영식아빠도 참. 낮에 일하구 저녁에는 쉬어야 되는데 뭐하러 저녁에 읍네를 나가셔. 근데 내 생각도 그렇네. 송이버섯은 이미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뭔가 특별하지 않으면 쉽지 않을 텐데” “그러니까유. 만나서 얘기한다는 핑계로 술만 마시구 오구. 하여튼 애들 아빠도 뭐 하나 오랫동안 밀고 나가지를 못한다니까유” “잘되면 좋지만. 그나저나 영식엄마는 그거 알어. 대박이야기라나 뭐 그런 거 있잖어” “아 그거 읍네에 생긴 도박장유. 들어가 보진 안했는데 말들이 많던데유. 신송리 부자로 소문난 강씨인가, 그 사람 몇 천 만원 날렸다구 소문이 파다하던데유” 영식엄마는 그야말로 남 얘기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고기집 여자 말대로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읍네로 달려가 빠찡꼬 앞에 있는 신랑을 끌고 와야 될 판에 남 얘기만 하니 민자씨는 답답할 뿐 이었다. 하지만 말 잘못했다가 부부싸움 만들기 십상인지라 민자씨는 좀 더 두고 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날 밤이었다. 민자씨 잠들기 전에 문단속 하려고 거실로 나와 현관문을 잠그려고 하는데 영식엄마와 아빠가 목청을 올리며 한밤중에 싸우는 게 아닌가. “지금이 몇 시여유. 왜 아예 거기서 살지 뭐 하러 왔어유” “내가 술 마시구 싸움질을 했어 오입질을 했어. 왜 큰소리를 치고 난리야” “당신 생각을 해봐유. 오늘이 며칠째냐구유. 돈을 벌어도 시원찮은 마당에 밤마다 돈 쓰고 다니고 몸 피곤하고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한다구유” “그래서 내가 집 거들냈냐? 여자가 남자 하는 일에 감 나와라 콩 나와라 하면 될 일도 재수가 없어 안된다구. 짜증나니까 그만해” “기가 막혀. 미치고 환장하겄네. 당신 말 다 했어. 여자라니, 그려 여자가 뭘 어떻게 했다구. 재수가 없다니 그게 할 말이니” “조용히 혀.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지금 조용히 하게 됐어. 16년 동안 같이 살아온 남자가 여자라서 재수 없다니.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어. 야 김민중 . 너 사람이야” 갈수록 영식엄마 목소리는 커지고 반대로 영식아빠 목소리는 작아지고 있었다. 결국 사고는 터지고 만 셈이었다. 남의 부부싸움에 그것도 한밤중에 끼어든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닌 듯 싶어 민자씨는 그냥 방으로 들어갔다. 이튿날 아침 민자씨는 궁금해서 견딜수가 없었다. 과연 영식아빠는 돈을 얼마나 잃은 것인지, 또 싸움은 어떻게 끝났는지를. 아침을 먹고 영식아빠가 일하러 나갔을 즈음 그녀는 영식이네 집으로 갔다. 의외였다. 영식엄마는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늘 그랬듯이 유행가를 틀어놓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김치를 절구고 있었다. “그래 영식아빠는 얼마나 돈을 잃은 거야. 화나니까 영식엄마 무섭더라” “아 -이구 창피스럽네유. 그런데 그건 뭔 말 이래유. 돈을 잃었다니유” “저기 영식아빠 그 대박나라인지 쪽박나라인지 거기 다닌 거 아녀. 그 뭐여 고깃집 여자가 어제 나한테 알려주던데” 잠시 말을 멈추고 뭔가 생각을 하더니 영식어마는 갑자기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그리고 하는 말이 민자씨 얼굴을 뜨겁게 했다. “하하하하- 그럼 아줌니는 영식아빠가 거기서 노름한줄 아셨시유. 아이구 그러면 내가 가만히 있겠어유” “그러면 우리 동갑계 회원인 고기 집 신랑한테 돈을 빌린 건 ......,” “아-아 그건 유 . 영식아빠 친구가 거기 오락실에 자주 가는 사람하고 호프집서 술 마시다 싸워서 삼십 만원에 합의 봐주느냐구 급한 김에 빌렸대유. 어제 싸운건유. 실속 없이 허구 헌날 친구 사고 친 거 합의 봐주고 친구 고민 들어 주고, 선배 위로해주고 그러느라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니까. 작정하고 한판 한 거예요. 하---하” 민자씨 어제 지레짐작으로 고기 집 여자 말을 전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었지만 영식아빠를 오해했던 자신이 부끄럽기만 했다. “에구. 나는 그런 줄도 모르구 하마터면 큰 실수할 뻔했네. 그럼 그렇지. 영식아빠가 한눈을 팔 사람이 아니지. 대박인지 쪽박인지 그런 건 아예 멀리 하는 게 좋은 거여. 하하하-” <필자연락처 : 019-609-9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