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거 좋겠네. 오-우 케이야. 글｜박창수 그림｜성주삼 “고 모 너무 걱정 하지마. 방 있고 목장 있고 그러면 됐지 뭐.” “얘는 꼬맹이들 입이 여간 까다롭냐. 그 애들 먹는 거 지대로 못해주면 나중에 너만 욕먹어.” “고- 모. 사실 저도 알아요. 팜스테이 한다고 해서 고모 큰돈 벌지도 못한다는 거. 하지만 고모 아이들에게는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거든요. 저 도와준다고 생각하세요 고모. 내가 고모 옷 예쁜 걸루 사다드릴께 응.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우유 홍보되잖아요. 잘 만 되면 아마 낙농육우협회에서 고모네 목장에 감사패 줄 일이잖아요” “아이구. 워쨋든 나 혼자 결정 할 일은 아니니 내일 다시 전화해라. 느 고모부한테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일이니까” 전화를 받고 나니 민자씨 머릿속만 어지러웠다. 사람구경하기도 힘든 촌에 손자 같은 꼬맹이 손님들이 와서 2박3일씩 묶고 간다니 사람 사는 것 같아서 좋긴 한데 문제는 아이들 먹을 것 챙겨주는 것은 순전히 민자씨 일인데다 어린 초등학생들이니 어디 아프기라도 하면 그게 문제일 것 같았다. 선생들이 따라온다고는 하지만 목장에 머무는 동안 문제가 일어나면 우선 책임을 져야할 사람은 목장주인이기 때문이었다. 남편의 반응은 환영도 아니고 그렇다고 반대도 아닌 그야말로 충청도 아저씨 미지근한 스타일 그대로였다. “자네가 하고 싶으면 해보구. 어차피 먹고 자는 게 중요한건데 당신이 해야 하는 일이니까” “당신은 워째 그렇게 애매모호하게 말한대유. 하면 하구 말면 마는 거지유” “아니 뭐 잔돈푼이라도 벌어 쓰려면 하라구. 나야 뭐 애기들 오면 이런 저런 설명해주고 보여주고 하는 프로그램만 준비하면 되니까” 남편의 우유부단한 말투에 조금은 짜증이 난 민자씨는 ‘홧김에 서방질 한다’는 말처럼 그냥 일을 저질러 보기로 했다. 돈을 번다는 생각보다는 아이들과 만나는 즐거움과 자신도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에 비중을 두기로 했다. 조카딸은 고맙다면서 어차피 팜스테이인 만큼 반찬은 일반적인 시골밥상에 올려지는 것들 서너 가지에 국 있으면 되고 잠자리도 크게 신경 쓰지 말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막상 당사자가 되면 어디 그런가. 민자씨는 남편에게 아이들 보여주고 같이 참여할 일에 대해 시간대별 프로그램을 짜달라고 제안했고 자신도 아이들을 위해 챙기고 준비해야할 것들을 생각했다. 아이들 먹일 음식에 대해서는 옆집 영식엄마에게 조언을 듣기로 했다. “말이 세끼지 그것도 쉽지 않은 것 같어. 그래서 말인데. 열무김치하구 오이소박이 김 이 세 가지는 늘 끼니때마다 올리는 기본 찬으로 정하고 잡채, 호박부침, 계란말이, 소시지야채볶음, 참치동그랑땡, 제육볶음, 콩나물무침, 조기구이 같은 것중 세 가지 정도를 더 추가하려구. 그리구 아욱이나 야채 넣어서 된장국 끓여 내거나 김치찌개 끓여 줄려구 하는데....‘” “어머, 아줌니는 벌써 다 정하셨네 뭐. 그 정도면 진수성찬 이지유 뭐. 단체급식 하는데 가보세유. 반찬 서너 가지면 땡이유. 그런데 국까지 일곱 가지가 되면 그건 너무 잘해주는 거지유. 아줌니는 어디 가서 식당 차리셔도 되겠네유. 음식솜씨야 원래 좋은데다 식단구성하시는 것 보니까 보통이 아니시네유” “아이구 영식엄마는 별소릴 다하네. 그나저나 음식할 때 영식엄마가 도와 줄거지. 그리구 참 영식이네 방 한칸 남는 것 좀 빌려줘야 되겠어. 물론 영식엄마 인건비하구 방 빌리는 건 꼭 계산해줄게” “아이두 됐시유. 아줌니. 무슨 계산? 우리 사이에 그런 것도 못도와드려유” 아이들이 오려면 한달이라는 시간이 남았는데도 민자씨 마음은 바쁘기만 했다. 식사야 영식엄마하고 둘이서 생각해둔 대로 준비를 하면 되는 일. 그리고 방은 자기네 남는 방 두 칸과 영식이네 방 한칸 해서 총 세 칸이면 아이들과 선생님 다 합쳐서 20명이라고 하니까. 크게 문제될 것은 없겠다 싶었다. 민자씨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욕실이었다. 여름이라서 아이들이 다 목욕을 해야할텐데 욕실 두개에서 20명이 씻으려면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영식엄마는 시원스럽게 해결방안을 내놓았다. “아줌니 애들이 호텔 오는 게 아니고 농촌생활 체험하러오는 거잖아유. 걱정할게 뭐 있어유. 집 앞에 개울에 물 잘 내려가겠다. 남자아이들은 안전하게 물장구치고 씻을 수 있도록 넓적돌이나 물가에 놓아주고 거기서 씻으라고 해유. 안그래유. 농촌체험인데 그게 훨씬 낭만적이지유” 그러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비만 오지 않는다면 여름철이니 노천에서 발가벗고 물장구치며 몸을 씻는 것도 특별한 낭만이 아닌가 싶었다. 남편은 우유 짜기, 우리 청소하기, 먹이주기, 목장초지에서 식물이름 알려주기, 젖소와 우유에 대한 이해, 아침운동, 캠프파이어 등을 시간대별로 구성하여 마치 리포트를 제출하는 학생처럼 민자씨에게 내놓았다. 민자씨는 남편의 프로그램에 식사시간을 넣고 그곳에 식단표를 추가시켰다. 프로그램을 두장으로 만들어 인터넷 메일로 조카딸에게 보내자 조카딸은 자신이 알고 있는 팜스테이 중에서 최고의 프로그램이라며 다른 학원이나 일반인들에게도 홍보를 해주겠다고 난리였다. 민자씨 칭찬을 듣자 기분이 우쭐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차피 할거면 완벽하게 하자는 게 민자씨 생각. 그녀는 영식엄마와 남편 이렇게 셋이서 똑같이 입기 위해 티셔츠를 구입하고 목장 앞에 걸어놓을 “마동 목장 팜스테이 참가하신 것을 축하 합니다” 라는 현수막도 맞추었다. 방에 도배를 하고 욕실을 수리하는 등 집안 곳곳을 정리하기도 했다. 이렇게 준비를 끝낸 민자씨는 마치 자신이 체험학습장 대장이라도 된 듯 기분은 최고조에 달했고 저녁이 되면 이집 저집 전화를 걸어 팜스테이를 하게 됐다는 자랑을 늘어놓았다. 20명 단위 한 팀만 받아도 50~60만원 순수익이 발생해 홍보만 되면 그야말로 짭짤한 돈벌이가 될 것 같다는 말도 했다. 예약한 첫 팀의 팜스테이는 어느새 3일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영식엄마하고 시장을 보러 가려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조카딸이었다. “그려. 고모다. 이제 사흘밖에 안 남았다 야. 그래서 오늘 음식 분비할 재료 사라러 가려구 한다.” “고모 어쩌면 좋아. 큰일 났어요. 우리 학원생 아이들 홍역이 돌아서 갈수가 없게 됐어요. 고모. 미안해요. 어쩌면 좋지요 .......”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더니 민자씨 심정이 꼭 그 꼴이었다. 인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으니 조카딸을 나무랄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그녀는 할말이 없었다. 하지만 당황해하고 미안해하는 조카딸 앞에서는 이성을 찾아야했다. “그려. 다음에 하면 되지. 너무 신경 쓰지 마라. 그래 맘 편하게 갖구 ....” 힘이 빠져 시장바구니를 거실에 던져놓고 마루에 주저앉은 민자씨의 모습은 흡사 아주 큰 쇼크로 잠시 정신이 나간 여자의 허탈하고 멍한 모습이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영식엄마는 더욱 난감하기만 했다. 모처럼만에 새로운 기분으로 그렇게 좋아하던 민자씨의 모습에서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영식엄마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영식엄마의 제안은 그야말로 놀라웠다. “아줌니 맘 편하게 가지셔유. 그리구 이런 건 어떻겠어유. 나두 태어나서 봉사 한번 해본 적 없거든유. 이참에 아줌니하고 나하구 돈 모아서 우리 돈으로 쓸만한 팜스테이 한번 해보는 건 어떻겠어유. 있잖아유. 읍네 결손가정 자녀나 생활보호 대상자 아이들 한 30명 모아서 그 애들을 팜스테이 시켜 주자구유. 그런 아이들 돈 때문에 남들 가는 수련회나 팜스테이 한번 못 가는데 우리가 한번 좋은 일 해보지유. 뭐 한 삼 십 만원 이면 장보는 거야 충분하지 않겠어유.” 민자씨로서는 갑자기 힘이 생기는 얘기였다. 돈 몇 벌기보다는 차라리 준비가 다 되었으니 불우한 아이들을 위해 좋은 일 하는 것은 아주 아름다운 일 이라는 생각이 그녀의 머리를 흥분시켰다. “그래 그거 좋겠네. 오-우 케이야. 시장 가자구” 그날 두 여자는 지끔 까지 시장을 갔던 일 중에서 가장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시장바구니를 흔들며 집을 나섰다. <필자연락처 : 019-609-9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