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엠투치즈 오사장이야 글｜박창수 그림｜성주삼 “ 언니 다음에 올라올 때 그것 좀 더 갖다 줘라. 너무 맛있는 거 있지” “맛있었다니까 다행이구먼.” “말도 마. 우리 옆집하고 윗층에 친한 집에도 줬는데 맛있다고 난리라니까. 계속해서 사먹을 수는 없냐고 하더라구. 언니 요즘 웰빙시대잖아. 사업으로 한번 시도해보는 게 어때.” “뭔 놈의 사업. 이 나이에 뭔 고생길을 나서냐. 싫어.” “아이구. 참. 인생은 육십부터래. 앞으로도 몇 십 년 더 살아야 하는데 힘 안들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 있으면 그게 행복한 거지 뭐” 전화를 끊고 나니 동생의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맛있고 웰빙시대구 인생은 육십부터라는데 일 한번 저질러 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목장집 아내로 남편의 일 거들며 30여년을 살아왔지만 지금까지 단 한번도 자신이 직접 뭘 만들어서 장사를 해보겠다는 생각은 아예 가져본 적이 없는 그녀였다. 하지만 여동생의 말을 듣고 보니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요즘은 공장에서 대량생산되어 나오는 음식보다는 직접 만들어서 파는 음식을 선호하는 이들이 늘고 있고 야채도 가격이 두 배가 넘게 비쌀지라도 무농약 무공해 야채를 선호하는 게 요즘 현실 아닌가. 며칠 전 동창 딸 결혼식에 가는 길에 여동생 남동생이나 보고 올 생각으로 서울에 다녀온 민자씨. 모처럼만에 들리는 지라 빈손으로 가기가 뭐해서 치즈를 만들어 갔다주었는데 다들 너무 맛있다고 하는 거였다. 사실 치즈 만드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옛날 시골에서 두부 만드는 것보다는 한참 쉬운 일이어서 한나절도 채 않걸렸다. 겨울에 옆집 형식엄마가 치즈나 한번 만들어보자고 해서 만들었는데 그때 양쪽집 남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것이 힘이 되어 다시 만들어 보았는데 역시 결과는 좋았던 것이다. 외국에서는 목장을 하는 가정에서는 직접 치즈를 만들어먹는다는 얘기를 들어보긴 했지만 국내에서는 음식문화가 달라서인지 낙농가들이 치즈에는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여동생의 전화를 받고난 그날부터 민자씨는 혼자서 고민에 빠졌다. 사실 1년후면 남편의 나이도 60이 넘는데 언제까지 50두가 넘는 젖소를 키울수 있을는지 걱정인데다 젖소를 안키운다면 도시로 가는 것 밖엔 없는데 농촌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그 감옥같은 아파트에 가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생지옥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녀에게 떠오른 묘안은 이런 거였다. 일단 자신이 일주일에 50개정도의 치즈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여동생 네 아파트 주민에게 꾸준히 판매를 하면서 6개월 후에는 100개로 늘려나간다. 이때부터는 형식엄마도 일에 끌어들인다. 치즈를 만들면서 다양한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1-2년 후 치즈제품이 여러 가지가 되면 그때서 젖소 수를 절반으로 줄이고 목장 한 켠에 치즈 생산시설을 작게나마 만들어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가는 것. 그녀의 튀는 머리는 이미 브랜드 이름도 만들어냈다. 민자씨의 민에서 ‘M’ 밀크의 밀에서 ‘M’ 이렇게 해서 ‘M2 치즈’ 라는 브랜드네임이 생겼다. 생각만으로는 안되는 일이다 싶어 그녀는 수첩에 이런저런 치즈사업계획을 적었다. 문제는 언제부터 시작할 것인가 그리고 서울까지의 물류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또 브랜드네임을 어떻게 키워 나갈 것인가였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남편으로부터 허락을 받아내는 일 이었다. 사업계획을 세우고 나니 민자씨는 어느새 자신이 사장이 된 것 만큼이나 흥분됐고 즐거웠으며 또 한편으로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이런 계획을 서울의 여동생에게 말하자 동생은 생각 잘 했다며 당장 추진을 하라고 했다. 아파트에서의 판매와 수금이야 자신이 책임지고 해주겠다면서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며 호언장담을 했다. 하지만 과연 남편이 어떻게 나올는지 그녀로서는 머리카락이 곤두설 만큼 긴장되는 일이었다. 성격이 급한 그녀로서는 오랫동안 참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남편이 식탁에 앉자 그녀는 입을 열었다. “저기유. 내가 뭣 좀 해볼라구하는데 ....,”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여. 뭘 해보겠다는 거여” “저기 치-즈를 만들어서 서울 영자네 아파트사람들에게 팔아보면 어떨까 해서유” 그제서야 남편은 놀란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민자씨의 아주 태연한 모습에서 남편은 그냥 한 번 해본 말이 아니라 진지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 했다. “아니 젊어서도 안한 걸 나이 들어 왜 사서 고생 하려구 그려. 그리구 뭐 집에서 만들어 팔면 양이 얼마 안돼서 그거 돈이 되는 일도 아닌데 ....” “처음에야 뭐 큰 돈 벌 겄시유. 하지만 이제는 우리도 언제까지 많은 젖소를 키울 수 있을런지도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 같구. 나이가 더들 면 젖소는 줄이고 새로운 일거리를 찾는것도 괜찮은 생각이 아닐까 해서유. 뭐 처음에는 내 손으로 만드는 거니까 믿져야 본전이겄지유” “글쎄. 뭐든지 한번 시작했다면 생각보다 손 가는 일이 많을테구. 준비할 것도 많을 것인디” 저녁밥상에서의 사업 토론은 조금 밍숭밍숭하게 끝이 났다. 남편은 어떤 결정도 내려주지 않았고 민자씨 역시 반드시 하겠다는 식의 못 박는 말도 하지 못했다. 민자씨는 남동생과 큰아들에게 차례대로 전화를 걸어 자기 생각을 말했지만 결과는 1대1이었다. 남동생은 나이들어 뭐하러 고생을 자처하느냐고 말했지만 아들은 달랐다. 하고 싶으면 해보는 것이 후회도 없을 일이니 해보라고 했다. 서울까지의 제품이동이 힘들면 자신이 일주일에 한번씩 내려와 운반해주겠다며 응원을 하고 나섰다. 아들의 지지에 힘이 생긴 그녀는 꿈에 부풀어있었다. 남편은 뉴스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민자씨는 자신이 만든 치즈를 먹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얼굴, 훗날 규모가 커져서 종업원을 거느리고 일하게 되었을 때 여장부 같은 당당하고 멋진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다. 그녀는 그렇게 행복한 상상에 빠져들어 갔다. 한마디로 날벼락이었다. 치즈가 무엇이 잘못된 건지 치즈를 먹고 죽은 사람이 다섯이나 되는 거였다. 죽은 사람들의 가족들이 내려와 그녀의 머리를 휘어잡고 온갖 욕설을 다 퍼부으면서 사람 살려내라고 소리를 치고 집안은 그 사람들의 행패로 모든 게 부서지고 망가지고 난리가 아니었다. 그러는 사이에 경찰이 찾아왔고 그녀는 쇠고랑을 차고 경찰차에 타야했다. 남편은 눈물을 흘리면서 끌려가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교도소 안으로 들어가자 젊은 여자가 반말을 하면서 시비를 걸었다. “얼굴 봐서는 곱게 늙었는데 뭔 짓을 했걸래 왔수. 남의 서방 후린 건 아냐. 얼굴 반반한 년들 치고 팔자 드세지 않은 년 못 봤으니까. 어떤 시나리오인지 궁금해지는데. 그래 남자는 젊은놈 이었수. 거시기는 쓸만했구. 하하하하하? ...” 민자씨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죄지은 인간들 모인 교도소라고는 하지만 아래위도 없이 지껄여대는 여자의 입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었다. 손바닥으로 여자의 귀싸데기를 후려 갈겼다. 그러자 여자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어, 미친년이네 이거. 감히 니가 나를 쳤어. 뭐 이런 썅년이 다 있어” 여자는 민자씨의 머리를 잡더니 솥뚜껑같은 손으로 귀뺨을 내리쳤다. 순간 민자씨 별이 반짝하는 게 아닌가. 죽기 살기로 여자의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잡고 온 힘을 다해 밀어부쳤다. 그러자 여자는 바닥으로 나뒹굴었고 민자씨는 여자의 몸위로 올라가 가슴팍을 짖눌렀다. 그리고 소리쳤다. “죽어라 이년. 내가 누군줄 알아. 나 엠투치즈 오사장이야 이 어린년아” 순간 민자씨 호통 치는 듯한 남자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꿈 이었다. 남편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 -사 -장. 허허. 그렇게 사장이 되고 싶으면 하라구. 나 참 말년에 마누라를 사장으로 모시게 생겼구먼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