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 한 정 헌 늘푸른 한의원 원장 건 망 증 매서운 추위와 폭설로 시작된 겨울 속에 찾아온 2006년도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병술년(丙戌年) 한해 독자여러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다시 한번 기원합니다. 2월의 시작과 함께 연초에 세운 계획들을 다시 한번 점검해보시고 작심삼일 하신 계획이 있다면 마음을 한번 더 다잡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찾으려는 물건의 위치를 기억하지 못하여 고생해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들이 가끔 일어난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매일 발생하는 일상이라면 그 불편함이 클 것입니다. 이러한 증상을 우리는 건망증(Amnesia)이라 하는데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많은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현대인들이기에 건망증을 고민하며 한의원을 찾는 분들이 늘고 있습니다. 건망증은 단기기억 장애 혹은 뇌의 일시적 검색능력 장애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시간·공간적인 맥락에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고리인 기억현상에 차질이 생긴 것입니다. 건망증의 원인은 다양한데 크게 나이와 심리적인 요인, 환경 등에 의해 영향을 받습니다. 인간의 뇌세포는 30세를 넘으면 크게 감퇴되기 시작해 손상된 뇌세포는 재생되지 않으며 따라서 나이들수록 기억력 감퇴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두뇌활동의 정도나 형태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또 지적활동이 낮은 사람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특히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긴장은 뇌세포의 피로를 촉진시켜 건망증을 증가시키고 우울, 초조 등의 심리적인 요인도 지각력을 떨어뜨려 건망증을 심화시킵니다. 신체적인 피로와 수면부족도 집중력을 저하시켜 건망증을 유발하기 쉬우며 그밖에 어떤 일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완벽한 일처리를 위한 강박관념적인 성격도 건망증을 쉽게 겪습니다. 또한 지나친 알코올 섭취는 뇌의 신진대사를 떨어뜨려 기억력 감퇴를 촉진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유전과는 무관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의원을 찾으시는 대부분의 환자분들은 건망증이 치매로 악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며 걱정하시곤 합니다. 하지만 치매에서의 기억력 상실과 건망증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임상적으로 볼 때 건망증은 자신이 어떤 기억이 상실되었음을 잘 알지만, 치매환자는 자신의 기억력이 상실되었음을 알지 못합니다. 치매와 건망증을 초기에 구별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치매에 있어서는 과거에 자신이 경험하였거나, 있었던 일에 대한 기억을 전반적으로 광범위하게 모두 잊어버리는 특징이 있으나, 건망증은 기억된 것의 일부를 선택적으로 잊어버리는 것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단순한 건망증의 기억력 장애는 자기 친한 친구 이름이나 자기 집 전화번호가 생각나지 않는 증상이지만 치매의 기억력 장애는 자기가 누구인지 잊거나 식사를 하고도 다시 상을 차리기도 하는 증상으로 나타납니다. 한의학에서 기억은 심(心)과 비(脾)와 신(腎)의 세 기관이 관계하는 것으로 봅니다. 즉, 비(脾)의 영양 작용에 의해서 생각이 잘 이루어지게 되고, 단기간의 기억은 심(心)에 의해, 장기간의 기억은 신(腎)에 의해 좌우되는 것으로 보았다. ‘동의보감’에는 건망증에 대해 ‘건망증은 사색을 지나치게 하여 심(心)이 상하면 혈이 줄어들고 헤쳐져서[散] 신(神)이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게 되고 비(脾)가 상하면 위기(胃氣)가 쇠약해지고 피곤해져서 생각이 더 깊어진다. 이 두 가지가 다 사람으로 하여금 깜박 잊어버리게 한다. 치료하는 방법은 반드시 먼저 그 심혈을 보양하고 그 비토(脾土)를 조리하며 정신을 안정시키는 약제를 써서 잘 조리시켜야 한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즉, 기억력 감퇴의 원인을 심장과 비장에 있다고 보고 근심, 걱정, 두려움이 지나치게 많으면 심장과 비장의 기능이 떨어져 뇌 안에서의 혈액 순환이 잘 안 되고 이에 따라 정신력이 약화돼 건망증이 심해지고 따라서 정신과 생각을 조절하는 심장과 비장에 충분한 영양이 공급되면 뇌 기능이 원활해져 머리를 맑게 하고 집중력을 길러주어 건망증이 치료된다는 것입니다. 건망증의 치료는 함께 나타나는 증상을 살펴 정신적인 과로나 영양 장애로 인한 건망을 심비양허(心脾兩虛), 장기간의 기억 장애를 심신불교(心腎不交), 단기간의 기억장애를 신정허손(腎精虛損), 다른 질병의 결과인 담음(痰飮), 어혈(瘀血) 등에 의해서 생기는 건망증상 등으로 감별하여 치료합니다. 대표적인 심비양허(心脾兩虛)에 의한 건망증은 심장과 비장의 기능이 허약하여 발하는 것으로 오랜 걱정, 근심 등의 생각에 의해 심장이나 비장이 손상되어 나타나는 혈액 등의 영양 손실에 의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지나친 염려나 생각 등으로 정신력이 피곤하고 입맛을 잃어 식사량이 매우 적어지고 가슴은 늘 놀란 사람처럼 두근거리고 잠을 깊이 이루지 못하면서 건망증이 같이 나타나는 경우로 귀비탕을 위주로 하여 치료합니다. 신정허손(腎精虛損)에 의한 건망증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기억력이 저하되고 체력이 약해지는 노화현상과 관계되는 것으로 한의학에서 이를 선척적인 기운인 정(精)이 부족해지는 것으로 봅니다. 한의학에서는 신장을 단순히 소변을 걸러내는 배설기관으로만 보지 않고 사람의 선천적인 생명을 주관하는 정(精)을 갖고 있다고 여깁니다. 만약 지나친 부부생활 등으로 정기가 훼손되면 두뇌에 전달되고 보급해야할 영양물질의 생산에 차질이 오고 부족해져 건망증이 생기는 것입니다. 신장의 정(精)이 과다하게 소모되고 골수가 약해진 사람은 늘 허리가 시리고 힘이 약해지며 소변이 시원치 않거나 정력이 약해집니다. 이때에는 육미지황원을 기본으로 하여 치료합니다. 한의학에서는 집중력이 떨어지고 산만한 경우 그 원인이 많은 경우 ‘열(熱)’에 있다고 봅니다. 즉, 간이나 심장의 기운이 너무 강해 열이 많으면 항상 불안정하고 산만해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머리를 맑게 해주려면 지나치게 머리로 몰린 열을 식혀주는 치료를 하며 음식도 더운 기운의 음식보다는 서늘한 기운의 음식을 먹도록 합니다. 한약으로는 청뇌탕(淸腦湯), 총명탕(聰明湯)이 있는데 말 그대로 머리를 맑게 해주는 약입니다. 백복신, 원지, 반하, 황기 등의 약재가 들어가며 여기에 석창포와 용안육 등을 첨가하기도 합니다. 가정에서 원지(遠志), 석창포(石菖蒲), 천마(天麻) 등을 달여 마시는 것도 좋습니다. 뜻을 멀리 가진다는 원지는 심장을 안정시켜주고, 석창포는 심장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혈맥을 뚫어주며 천마는 머리를 맑게 하는 효과가 있어 기억력 증진에 도움이 됩니다. 다만 장기간 복용하려면 한의사의 진단을 받아야 합니다. 또한 시간이 날 때마다 목뼈 양쪽으로 움푹 들어간 곳인 풍지혈이나 눈꼬리 옆으로 움푹 들어간 태양혈을 지압해주면 스트레스와 피로는 가라앉고 머리가 맑아집니다. 엄지와 검지 손가락뼈가 만나는 합곡혈은 비위허약으로 인한 소화불량, 두통 등에 좋은 혈자리로 합곡혈의 지압은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소화불량이나 두통을 동반한 기억력저하 증상에 좋습니다. 건망증에는 담배가 가장 나쁘며 호두, 잣 등의 견과류를 먹는 것이 좋습니다. 필자연락처 : ☎ (02)2247-10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