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뭐하는 짓(?)들여 ”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하지만 그 진실 하나 밝히는 것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고 고통 받고 또 전 국민의 가슴이 답해야 한다면 처음부터 진실게임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시간이 조금만 흘러도 그 진실 여부는 밝혀지기 마련이다. 기다리면 과학은 과학으로서 입증될 일 인데 전문가도 아닌 사람들이 나서서 떠들어대고 언론은 정치인 비리 하나 제대로 못 캐내는 것들이 그 어려운 과학 분야를 마치 샅샅이 다 알고나 있는 듯 하루에도 몇 번씩 뉴스라고 내보내고 있으니 그해 대한민국 12월은 어지러운 현실 그 자체였다. 축산학과 출신인 민자씨 남편은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가슴을 쳤다. 말수 적고 점잖은 그의 입에서 오죽하면 욕이 나올 정도 된 것이다. “개만도 못한 인간들. 전 세계에 나라망신 다 줘놓고도 뭐가 모자라서 저 지랄들을 하는지 모르겠네. 몇 달만 기다려도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드러날 일인데 왜 날뛰고 지랄혀서 연말을 이렇게 짜증나게 하는 겨. 이 인간답지 못한 넘들.” “누가 아니래유. 저런 것들이 대학, 대학원 나와 기자랍시고 떠드는걸 보니 한심 혀유. 지들이 그렇게 잘 났으면 지들이 한번 해보지. 남 잘되는 꼴을 못 본다니까유. 그러나 저러나 황 박사님에 대한 것이면 다 물고 늘어지니 저걸 어쩌면 좋아유.” 화가 난 남편 옆에서 민자씨는 훈수를 두었다. 복제니 배아줄기세포니 뭐 그런 전문적인 것에 대해 민자씨도 아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허구 헌날 ‘있다’, ‘없다’, ‘아니다’, ‘맞다’ 등등 난리들을 치고 있으니 하루하루 짜증만 났다. 게다가 결과야 어떻게 날지 모르지만 방송 신문 다 모조리 물고 늘어지고 헐뜯고 하는 짓이 참으로 우습지도 않았다. “어찌됐든 저놈들도 미친놈 들여유. 지금 눈사태로 온갖 재산 다 잃은 집들도 있고 제자식도 안 키우는 인간들 때문에 해외로 입양을 가는 아이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은 판에 정작 취재할 것은 안하고 똑같은 내용 갖고 서로 잘난 양 떠들어대니 이게 뭐하는 짓이래유. 참 기가 막히네유.” 혀를 차면서 풀어놓는 민자씨의 훈수에 남편도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자식 낳아서 방송국이나 신문사 안보내길 잘했지. 저런 놈들이 무슨 저널리스트라고. 에구. 저러다 욕심나면 국회의선 선거 나가서 그 잘난 주둥이로 서민들 인기업고 당선 되겄지. 썩어 빠진 언론에 관심을 두는 우리네가 멍청한 일인지도 모르지...” 남편의 말이 끝날 무렵 민자씨는 아예 TV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동짓달 겨울밤 참으로 길었다. 저녁을 먹은 지 한참을 지났건만 시계는 그제 서야 저녁 아홉시 반을 가리켰다. 아마 TV 드라마도 볼 수 없었다면 그녀로서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 삶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민자씨에게 그나마 유일한 한 가지 즐거움은 이제 네 살 된 손자와 전화 통화를 하는 것. 민자씨 오늘밤도 어김없이 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날 춥지. 애비는 들어왔어. 성구는......,” “할무이 나 김성구야. 할무이 어딘데.” “우리 성구 밥 많이 먹었어. 성구야 날 추우니까 집에서만 놀아라. 엄마 말 잘 듣고. 알았지.” “할무이 나 매 맞았다. 있잖아, 로봇트 사달라구했는디 엄마가 안 사줬어. 그래서 밥 안먹었어.” “그렇구나. 우리 성구 로봇트 좋아하는구나. 할머니가 사줄테니까 밥 많이 먹고 엄마 말 잘들어. 응.” “응 할무이 끊어.” 민자씨는 생각만해도 눈에 아른거리는 손자지만 날이 추워서 내려오라고 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한겨울에 남편 혼자 놔두고 손자 보러 서울을 가자니 마음에 걸렸다. 그나마 전화로라도 귀여운 손자 목소리 듣고 나면 어찌나 즐거운지 몰랐다. 얼마나 로봇트가 갖고 싶었으면 애가 전화로 그런 말을 다 하나 싶어 민자씨는 이튿날 남편에게 돈 십 만원을 주고 읍네가는 길에 며느리에게 부쳐주라고 했다. 아이들 장난감도 쓸만한 것은 사 오만원이 넘는다는 얘길 들었던 터라 달랑 오만원만 보내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며느리가 돈 아까운 것을 알아 좀 지독하게 사는 것을 보면 민자씨는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너무 돈만 알아도 안된다는 걱정을 하곤 했다. 며느리의 그런 성격을 아는 터라 손자 녀석이 로봇트 사달라고 보채다가 분명 두들겨 맞았을 거라는 상상이 그녀의 머릿속에 영화처럼 스쳐갔던 것이다. 그날 저녁 며느리는 돈 잘 받았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제 딴에는 미안했는지 “장난감 자주 사주는데도 애가 로봇트를 너무 좋아해서 늘 노래를 해요.”라며 자신은 겨울 돌아왔는데도 어머님, 아버님 내복 한 벌 못 사드렸는데 죄송하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이틀정도 지난 날 아침 아들 동창회모임 엽서가 집으로 날라와 전화를 걸었더니 반갑게도 손자 녀석이 받는 게 아닌가? “성구 아침 먹었냐? 아이구 귀여운 놈. 전화도 잘 받네.” “할무이 로봇트 안사줘? 나 사준다고 했잖아.” 그러자 그 사이에 며느리가 전화를 빼앗아 받았다. “어머니세요. 별일 없으세요.” 하지만 민자씨 화가 버럭 났다. 손자 녀석에게 로봇트 사주라고 돈까지 보냈으면 사줄 일이지 애한테 할머니가 거짓말한 격이 됐으니 짜증이 난 것이다. “애미야, 어떻게 된 거여. 애가 노래를 하는 디. 그래, 그거 하나 사주지. 아니 돈까지 보냈는데 왜 안 사주냐 그래. 참말로 난 이해가 안되는 일여. 너 알뜰살뜰 하는 건 안다만 아 돈까지 보냈으면 사줘야지 그래. 참 -나.” 그런데 며느리 하는 말은 그게 아니었다. “어머 어머님 어제 사줬어요. 성구 제가 저런다니까요. 정말이예요, 어머니.” 애는 사달하고 하고 며느리는 사줬다고 하니 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하는 건지 민자씨로서는 화나는 일이었다. “여하튼 안 사줬으면 빨리 사줘라.” 전화를 끊고 나니 며느리 하는 짓이 야속하기만 했다. 분명 사주지 않고서 사줬다고 거짓말을 한 게 분명했다. 아이들은 본래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며느리가 그 돈을 다른 곳에 쓰고 사줬다고 발 뺌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죽 써서 개준다더니 자신이 꼭 그런 것 같았다. 아껴 둔 금쪽같은 돈을 보내 줬건만 그 돈을 다른 데에 쓰다니 참을 수가 없었다. 분통이 터진 민자씨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아들에게 핸드폰을 걸었다. 그리고는 화부터 냈다. “성구 애미는 왜 그 모양이냐? 애가 로봇 갖고 싶다고 해서 돈을 보냈으면 사 줄 것이지. 난 뭐 돈이 넘쳐나서 보낸 줄 아냐?” “아니 엄마 그게 그런 게 아니고...” 아들은 무슨 말을 하려했지만 민자씨 급한 성질이 아들 말을 들어줄 리가 없었다. “아니고 밖이고 간에 니들한테 내가 돈을 보내면 이젠 사람이 아녀. 그 뭐하는 짓들여. 끊어.” 이렇게 전화를 끊고 나니 속이 좀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러나 민자씨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후에 걸려온 아들의 전화내용을 들었더니 모든 게 자신의 오해였다. 며느리는 손자가 로봇을 좋아해서 매번 사줘도 하루 이틀 지나면 망가지기에 이번에는 시어머님이 준 돈인 만큼 제대로 된 장난감을 사준다고 마음먹고 10만원 짜리 레고를 구입했다는 거였다. 레고는 고장도 나지 않고 아이들 교육이나 정서발달에 아주 좋은 장난감이라서 그간 사고 싶어도 돈이 비싸 못 샀는데 덕분에 구입해서 아들 내외는 마음이 뿌듯했다는 게 아닌가? 민자씨 아들한테 할말이 없어 전화로 이렇게 말했단다. “요즘은 그 뭐냐. 하두 했다, 않했다, 없다, 있다 그렇게 정신없게 만드는 사람들이 많어서 그만. 내가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봤나보다. 미안 허다.” 라고. 필자연락처 : ☎ 019-609-9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