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도 못해먹을 축산행정 � 김 영 진 한국농업사학회 명예회장 1. 국민에겐 겨와 밀기울, 가축에겐 알곡 1950년대까지 우리나라 농후사료는 강피류나 낙곡(落穀)을 이용하는 수준이었다. 6.25동란 이후 사회가 안정되면서 차차 육류수요가 늘자 사료이용의 효율을 높이고자 1956년 ICA 자금을 통해 54대의 분쇄기(粉碎機)를 도입하였다. 이것이 우리나라 사료가공의 효시가 된다. 이 분쇄기는 소량의 국산옥수수나 수수 등 잡곡과 칡잎, 아카시아잎 등을 분쇄하여 배합사료 원료로 쓰고자 함이었다. 그러다가 1958년 주한미군에 대한 계란군납이 시작되면서 농후사료 부족이 심각해지자 1960년대 초 태국산 찹쌀싸래기 1천톤을 수입한 바 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농후사료 수입이라 하겠다. 이때 싸래기 수입의 명분은 군납용 수출원자재란 것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사료곡물의 수입은 현재 약 1천만톤에 20억불 해당량이 수입되고 있지만, 이렇게 사료곡물 수입이 폭등한데는 국민식량의 자급율을 비정상적으로 높이고자 한데도 원인이 있었다. 1962년 수입밀의 제분율(製粉率)을 77%에서 85%로 갑자기 상향조정한 사실이 있다. 식량수입이 늘어나자 외화부족에서 온 조치였으나 같은 밀에서 8%의 제분율을 높였다는 것은 종래 밀기울로 쓰던 부분을 8%가량 밀가루로 만들었다는 뜻이 된다. 곡 밀기울 전체 생산량이 30%가량 줄어든 것이다. 이통에 농후사료 부족으로 사료파동이 일어났고 이를 진화하고자 허겁지겁 사료용 옥수수를 그만큼 더 수입하게 되었다. 결국 사람에게는 밀기울을 먹이고 가축에게는 알곡인 옥수수를 수입해서 먹인 꼴이다. 이와 같은 예는 내가 축산국장직에 있던 1974년에도 있었다. 제1차 에너지파동에 이어 세계곡물파동이 있었을 때였다. 쌀의 자급도를 높인다고 쌀의 도정율을 9분도미에서 7분도미로 하향조정한 바 있다. 종래 쌀겨가 되던 부분을 덜 깎아 쌀의 수율을 높이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쌀겨의 수율은 반대로 적어지게 된다. 이 겨의 감소량은 사료용 밀이나 옥수수를 더 수입하여 충당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또 사료파동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겨를 먹여 비록 식량자급율은 그만큼 높일 수 있지만 그대신 사료곡물을 더 수입해야 되기 때문에 전체곡류자급율은 거의 같게 됨을 이유로 나는 7분도미에 극력 반대하였으나 쌀자급도 우선의 원칙에 밀려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시절에는 대통령이나 장관들의 쌀자급도 우선의 원칙에 밀려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사료곡물수입의 다과는 안중에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밀기울이나 쌀겨는 사람에게 먹이고 그보다 질이 월등히 높은 밀이나 옥수수를 더 수입해 돼지나 닭, 소에게 먹인 꼴이 되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아도 해학적인 일이다. 천지간 만물 중에 사람이 가장 귀하다는 유교적 사상에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오늘날 쌀이 남아돌아 농민이나 농림행정이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면서 지난날 사람에게 밀기울과 겨를 먹이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고통은 좀 덜하지 않았을까 하며 그때를 회상하게 된다. 2. 1970년대 소 밀도살(密屠殺) 1970년대 축산분야의 어두운 면이 바로 소의 밀도살이었다. 당시는 쇠고기공급이 부족하여 가격이 오르면 쇠고기공급을 늘려 가격을 내리는 게 아니라, 물가인상의 요인이 된다하여 인위적으로 가격을 단속하는 가격 상한제를 시행하던 시기였다. 이 통에 도축업자나 식육상들은 소에게 강제로 물을 먹여 쇠고기의 중량을 늘려 채산을 맞추는 수 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소에게 강제급수(强制給水)를 하자니 자연 밀도살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밀도살은 도축세 등 과세자료도 없기 때문에 1970년대 성행하던 밀도살은 참으로 근치가 어려웠던 과제였다. 처음 강제급수로 쇠고기의 중량을 늘린다는 정보를 들었을때 나는 반신반의 하였으나 극단적으로 물을 먹여 도살하였을 때 약 30kg 내외의 도체중(屠體重)이 늘어난다는 것은 시험도살을 해보고 나서야 확인한 수치였다. 그 무렵의 강제급수는 여러 가지였다. 초기에는 소의 입을 벌리고 강제로 소금을 퍼먹이었다. 갈증이 심한 소는 능동적으로 물을 양껏 마시게 된다. 소의 생리를 이용한 간접적 강제급수법이다. 그 후에는 소의 입을 벌려 꿰달아 놓고 강제로 물을 퍼먹이는 방법으로 발전하였는데 이러한 직접적 강제급수 방법의 효과는 컸다. 이 두 가지 방법은 살아있는 소에게 하는 짓이다. 그 후에는 소를 도살한 직후 미처 살이 굳기 전에 소의 동맥을 끊고 컴프레셔로 동맥을 통해 물을 주입시키는 방법이다. 강제급수하는 방법도 이같이 단계적으로 발전되었을 뿐 아니라 죽은 소에게도 물을 먹이는 방법은 이 세상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는 기묘한 방법일 것이다. 나는 이를 근절시키고자 강제급수나 밀도살의 현장을 고발하는 자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실시하였으나 큰 실효가 없었다. 1972년에는 마침 계엄령이 선포되어 계엄군이 총동원되어 강제급수와 밀도살을 단속하였다. 그 결과 상당한 실효를 거두게 되었다. 그러자 밀도살의 장소가 달라졌다. 소형트럭에 소를 싣고 오는 도중 덮개로 가리진 트럭 안에서 밀도살을 한다는 것이다. 달리는 차안에서 도살하니 산지에서 출발할 때는 소로 출발하지만 도착지점에 이르면 쇠고기로 도착되는 것이다. 단속할 수록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내는 것이다. 이 통에 1973년 170명의 축산물 검사원의 인건비를 국가예산으로 확보하기 시작하여 1976년에 가서야 정식 국가공무원으로 양성화 시켰지만, 국가공무원이 단속한다고 이와 같은 사회부조리가 근절되었다고 믿지는 않는다. 지금 돌이켜 볼 때 밀도살이 생기게 된 원인은 쇠고기 부족현상을 법을 통한 인위적인 방법으로 막은데 있다. 이에 더하여 강제급수 시작된 것은 쇠고기 소매가격을 지나치게 통제한 점에 있다. 경제는 물 흐르듯 해야 하는데 목적을 위해 중간에 보를 막은 것이 잘못이었다. 최근 주택가격안정을 위해 공급보다 단속(원가공개, 높은 과세)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1970년대 밀도살 단속에서 알 수 있듯 새로운 부작용만 양산되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