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도 못해먹을 축산행정 � 김 영 진 한국농업사학회 명예회장 1. 대단위 한우목장의 설치 1970년대를 회상해볼 때 잊을 수 없는 것은 대단위 목장의 조성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민철기씨가 당시 청주의 좁은 면적에서 1천두 내외의 비육우목장을 경영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초지가 필요없는 단기비육이었기에 가능하였다. 당시에 번식이나 육성우 중심의 큰 목장은 전혀 없었다. 그러다가 후일 국무총리가 된 김종필씨가 1969년부터 서산에 2천1백여 ha의 목장을 조성하여 번식우 중심의 한우목장을 개설하였다. 지금은 농협중앙회가 운영하고 있지만 1915년 일본인 아까보시(赤星鐵馬)가 현 국립종축원 자리에 개설한 5백 ha의 목장보다 4배가 넘는 대규모 목장으로, 당시는 삼화(三和)목장이라 불렀다. 당시 대관령에 뉴질랜드 지원으로 육우시범목장도 계획 중인터라 농림부는 소증식 및 경영개선책의 일환으로 대단위 목장을 조성코자 45개 대기업 사장들을 초청하여 목장조성을 강권하였다. 유인책은 법인세, 소득세 등 5종의 세금을 면제해 주면서 국공유림을 개방하되 초지조성이 완료되면 그 땅을 불하(拂下)해주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 시책은 2, 3차 산업에서 얻어진 소득을 자금이 부족한 축산분야에 유치하면서 낙후된 산간오지의 개발에 기여할 수 있었다. 대단위 목장을 조성할 경우 오지까지 도로, 교량, 전기, 전화 등의 가설을 통해 인근의 지역사회 개발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사업은 당시 20여개 대기업들이 참여 하였으나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 곳은 그 반도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나마 한우중심에서 수익성이 안전한 낙농으로 대부분 바뀌게 되었다. 당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산림법 시행령의 규제가 심한 것이 문제였다. 국공유림을 사용할 때 그 임대료는 지가(地價)의 몇%를 부과한다고 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규정 때문에 사업을 꺼리는 기업들이 여럿이었다. 예컨대 인적이 드믄 대관령의 원시림은 사람의 출입이 불가능한 후미진 국유림이다. 개발 전에는 평당 몇원 밖에 안되던 땅이 도로를 개설하고 전기가 들어가면서 쾌적하고 별유천지가 되어버린다. 개발 후의 땅값은 개발 전과 같을 수가 없다. 임대료는 지가의 종율제(從率制)로 되어 있어 국공유림을 임대한 축산업자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돈 들여 개발해 놓고 올라간 땅값에 따라 턱없이 높아진 임대료를 물어야 하는 모순 중의 모순에 빠지게 된다. 이런 일을 예상치 못했던 나는 이 방면에 이해가 많은 김종필 총리의 주선으로 목장조성에 한해 국공유림의 임대료는 사업착수 당년의 임대료로 고정시키느라 어려움이 많았다. 2. 오산이었던 육우시범 목장의 설치 현 국립종축원의 대관령지장은 당초 육우시범목장으로 출발한 곳이었다. 우리나라 낙농업개발에 독일과 합작한 한독낙농시범목장이나 뉴질랜드와 합작한 한뉴낙농시범목장의 역할이 컸듯이 육우도 시범목장을 설치하면 그 결과가 좋을 것으로 나는 믿었다. 1971년 12월 통상회담팀의 일원으로 팀장이던 이낙선 상공부장관을 따라 뉴질랜드에 간 적이 있었다. 이때 나는 양국 합작으로 우리나라에 육우시범목장을 설치하자고 제안하여 원칙적인 합의를 본바 있다. 그해 4월에는 호주의 지원으로 남원군 운봉에 한호면양시범목장을 설치한 터라 육우까지 시범목장을 설치하면 외국의 선진기술 도입으로 육우화(肉牛化)되어가는 한우의 사양기술 개선에 크게 유리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73년 8월에는 호주에 다녀오는 중에 재차 뉴질랜드에 들려 육우시범사업에 대한 구체적 일정을 합의하고 74년 6월, 드디어 평창군 도암면에 한뉴육우시범목장을 설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시범목장도 설치과정에 부처간의 협조가 이뤄지지 못해 나는 스스로 사서 고생한다는 한탄을 여러 번 하였다. 설치일정에 따라 뉴질랜드 전문가들은 이미 서울에 도착하였는데 그때까지도 정부의 직제와 정원조정권을 쥐고 있는 총무처(현 행정자치부)의 실무자들은 증원불가만을 떠들고 있었다. 다행히 후일 교통부장관이 된 김창식 국장이 뒤늦게 서둘러줘 국립종축장 대관령지장의 형식을 빌어 한뉴육우시범목장을 개설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었다. 이때 그가 서둘러주지 않았더라면 자칫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될 뻔 하였다. 이때 뉴질랜드는 우리나라와 합작으로 치즈공장을 설치한 뒤 그 원료는 뉴질랜드에서 반제품을 가져다 쓰기를 희망하였으나, 당시 우리나라의 치즈소비가 미약하여 마땅한 국내희망업체가 없자 치즈합작공장은 그저 뉴질랜드의 희망사항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설치된 육우시범목장은 당시 힘 기울여 추진하던 대단위목장조성사업과 맞물려 활발한 기술연수를 통해 설치목적을 무난히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으나,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한두 마리씩의 한우를 기르는 양축가들은 부업으로 기르는 한우를 위해 기술연수를 받을 필요를 느끼지 않을 뿐 아니라, 대단위 목장들은 착수 당시부터 새삼 기술연수를 받을 필요조차 없는 고급기술자들을 이미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짜로 교육을 시켜주겠다고 하여도 교육을 희망하는 자가 많지 않았다. 명백한 시행착오였다. 그리하여 얼마 안되는 연수생들을 배출하였을 뿐, 시범목장을 통한 경영기법 개선이나 사양기술보급은 기대한 만큼 거양하지 못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대단위목장들도 자기자본으로 막대한 투자를 하였으나 한우번식이나 육성우사업은 투자에 비해 이윤이 적을 뿐 아니라 조성당시의 여러 가지 어려움 때문에 새로 착수하는 신규투자가 없었다. 혹 있더라도 쇠고기 수급에도 큰 보탬이 되지 않았다. 1천두 규모의 목장이 10개가 늘어도 전체 소의 숫자에는 큰 영향이 없기 때문이다.결국 우리나라의 한우증식 및 육성사업은 부업으로 기르는 한두마리 사육이나 중소규모의 목장들이나 할 사업이란 사실만 깨달았을 뿐이었다. 수업 치고는 너무나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얻은 교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