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선택해야 할 시기’ 김 성 인 한국낙농신문 편집국장 돌아가는 국내외 상황을 보면 위기라는 생각이 들지만 실제 가슴속으로 위기라고 느끼는 낙농인은 과연 몇이나 될까. “막연히 앞날이 불안하기는 하지만 현재까지는 먹고 살만 하다보니, 몸으로 느끼는 위기는 아직 아니다”라는 낙농인은 혹시 없을까. 통계숫자로 한국 낙농의 10년을 되돌아보면 오늘의 낙농이 얼마나 변했는지 실감이 간다. 동시에 앞으로 10년 후의 변화는 과연 얼마나 급박스럽게 돌아갈는지도 짐작이 간다. 한국 낙농은 지난 2003년을 기점으로 더욱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지난 95년부터 2003년까지 젖소 사육두수는 매년 50만두에서 55만두 사이를 유지했다. 착유우 숫자도 28만두에서 29만두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그러던 것이 2004년에 접어들면서 사육두수는 급격히 줄어들고 동시에 착유우 두수도 10년 가까이 유지하던 패턴이 깨지고 말았다. 03년 51만8천두이던 사육두수가 04년에는 49만7천두, 05년에는 47만8천두, 06년에는 46만4천두로 줄었다. 착유우 마릿수도 02년 30만두를 유지하던 것이 03년 27만8천두, 04년 25만8천두, 05년 25만1천두로 감소했으며 지난해에는 25만두 선도 무너진 것으로 잠정 집계되고 있다. 물론 두당 산유량이 지속적으로 늘어 우유 생산량은 크게 감소하지는 않았지만 생산량도 계속 감소추세에 있다. 02년 253만톤에 이르던 원유생산량이 03년 236만톤, 04년 225만톤, 05년 222만톤, 06년에는 217만톤으로 감소했다. 아무리 두당 산유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도 사육두수 감소폭이 더 크다 보니 원유생산량도 매년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오히려 부족사태를 걱정해야할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분석된다. 이처럼 한국낙농이 2002년을 기점으로 크게 변화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제도의 변화 때문이다. 지난 99년 낙농진흥회가 탄생하면서 한국 낙농은 큰 전환기를 맞이했다. 당시 낙농진흥회는 가입률을 높이기 위해 회원들에게 전량 인수조건을 내세웠다. 이에 고무된 낙농인은 증산에 몰입했다. 그러다보니 우유 생산량이 넘치면서 한계를 느낀 낙농진흥회는 결국 2002년 11월 잉여원유차등가격제란 전대미문의 제도를 만들게 된다. 일반유업체도 덩달아 기준량 제도를 도입하면서 생산제한에 나서게 된다. 잉여원유차등제가 실시되면서 기준량을 초과한 원유는 반값을 지불하자 낙농인들은 어쩔 수없이 생산량을 줄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바로 그 결과가 2004년부터 나타나면서 젖소 사육두수는 급격히 줄어들게 된 것이다. 기준량 제도를 실시하면서 기준량을 정하는 방법은 진흥회, 서울우유, 일반유업체가 서로 제각각이었다. 일반유업체는 특히 자사 판매량을 기준으로 기준량을 정해 성수기에는 다소 늘려주고 비수기에는 다시 늘려주는 양을 회수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 현재에는 대한민국 적정 기준량이 얼마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가운데 사육두수는 줄어들어, 그로인해 원유생산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낙농인들은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특히 이런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폐업이란 극한 수단을 택한 낙농인들도 부지기수였다. 낙농이란 타 산업과 달리 바로 제도 변화로 인해 큰 영향을 받는 산업이란 것을 이 통계숫자는 말해주고 있다. 다시 말해 낙농은 제도의 산물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제도가 잘못되었을 때는 엄청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지금 바로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잉여원유차등가격제의 실패가 인정되면서 한국 낙농은 3년전부터 집유체계 개편을 비롯한 낙농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비록 각 주체들의 이해관계로 아직 접점을 찾지 못한 가운데 세월만 흐르고 있지만 이번에 마련될 제도개편은 과거 실패를 재연해서는 절대 안된다. 왜냐하면 낙농은 바로 제도의 산물로서 제도가 실패하면 낙농인을 비롯한 각 주체들의 피해가 막심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 한국낙농은 국제적으로도 큰 변화의 한 가운데 서있다. DDA농업협상은 그렇다 치더라도 낙농강대국인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비롯 낙농선진국이 모여있는 EU(유럽연합)와도 올해부터 FTA가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중국과 자유무역협정이 예고되고 있으며 조만간 일본과도 FTA가 추진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면 유제품의 관세가 단계적으로 철폐되거나 지금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국제적 위기 상황에서 한국낙농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것이 바로 지금 추진되고 있는 낙농제도 개편의 참 목적이다. 이러다 보니 낙농제도 개편은 매우 신중하고 시급히 이뤄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3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낙농인들의 제도개편 열기는 초창기와 달리 많이 시들어져 버린 것 같다. 각 주체들의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하면서 불협화음을 내고 더구나 제도를 이끌어낼 농림부의 축산국장과 축산경영과장까지 인사상 변동이 생겨 제도개선의 실타래는 더욱 꼬여 버린 듯 하다. 낙농인들 역시 막연히 불안하기는 하지만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도 아니다 보니 그 열기 역시 세월이 흐른 만큼 식어가고 있다. 유업체 역시 제도개편의 열기가 식었다고 해서 당장 손해 볼 일도 아니다 보니 돌아가는 상황만 무덤덤하게 바라만 보고 있는 인상이 짙다. 바로 제도개편의 주인공들이 사라져버린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한국낙농은 과연 위기인가’란 화두를 던져본다. 정책당국자는 각 주체들의 ‘합의’를 바탕으로 낙농제도 개편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어느 낙농석학은 지난 연말에 ‘유업체가 마음대로 쿼터량을 결정해 쿼터제를 시행한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자율적인 제도개혁은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설파했다. 낙농제도 개편을 위한답시고 3년이란 허송세월을 보낸 자체가 바로 이 석학이 지적한 내용을 뒷받침하고 있다. ‘돈’이란 이해관계를 놓고 각 주체들이 서로 양보해 합의점을 찾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예견된 사실이다. 이제 정책당국은 합의에 의한 제도개편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각 이해주체들의 의견은 최대한 수렴하되 위기의 한국낙농을 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낙농제도 개편은 ‘사또 행차 뒤 부는 나팔’이 될 수 있음을 정책당국은 인식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