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도 못해먹을 축산행정 � 김 영 진 한국농업사학회 명예회장 목초의 날과 목야지 개량 박정희 대통령은 1964년 서독을 방문하여 양국합작의 한독낙농시범목장을 설립하였고 1969년 뉴질랜드를 다녀와 평택에 한뉴낙농시범목장을 세웠다. 박대통령은 외국순방 중 겨울철에도 푸른 여러 낙농선진국의 초지를 보고 축산입국의 기초가 초지조성에 있음을 절실히 느꼈던 것 같다. 그 무렵 뜻 밖에 축산국장을 청와대로 불렀다. 박대통령은 청와대 인근에 자생하고 있는 맥문동(麥門冬) 한포기를 주면서 이것을 목초화 시키라고 지시하였다. 대통령은 한겨울에도 푸른 상태로 월동하는 맥문동을 목초의 호재로 이해했던 것 같다. 풀에 대해서 잘 모르는 법대출신 K국장은 이것을 듣고 농림부로 돌아왔으나 이 풀의 성상을 아는 이를 찾을 수 없었다. 당시 잠업과장이었던 나에게 K국장이 그 풀을 들고 뛰어 왔다. 그때는 나도 그 풀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당황하였으나, 맥문동은 약초로 특유의 독성이 있다고 하여 목초화 시키라는 박대통령의 지시에 대해서는 한 고비를 넘겼다. 해학적인 것은 목초의 날 제정이다. 1968년 초지법(草地法)을 제정하면서 매년 9월 5일을 목초의 날로 정하였다. 제1회 목초의 날에는 대통령을 주빈으로 모시고 이은상 작사, 박태준 작곡의 「목초의 노래」를 부르며 거창한 행사를 거행하였다. 전 국토가 풀밭으로 덮이다시피 한 뉴질랜드에도 없는 목초의 날이 겨우 4천ha 밖에 안되는 초지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의 목초의 날을 제정하였다는 것은 해학적인 일이나, 대통령의 축산입국에 대한 의지만은 알아주어야 한다. 대통령이 초지에 대한 관심이 크면 클수록 어려움을 겪은 것은 실무자들이었다. 대통령 눈치에 민감한 당시의 장관이 실적을 올리고자 한정된 예산으로 초지조성 면적을 턱없이 늘려 놓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야초지에 풀씨만 뿌려놓고 초지조성 실적에 올려지게 된다. 일년이 지나면 개량목초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국고보조로 조성된 초지는 감사원 감사를 받게 된다. 야초만 남은 풀밭을 조성초지라고 보아줄 감사원이 없다. 이통에 초지조성과 관련한 실무자들은 늘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때로는 모가지가 날아가는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 무렵 목야지개량은 모가지개량이란 말도 유행하게 되었다. 송아지의 단발령 광복 전 남한의 한우는 약 9십만두였다. 이것이 광복 이후 축제분위기 속에서 많이 도살되어 1949년에는 60만두로 줄었다. 다시 6.25동란으로 많은 소가 도살되거나 폐사하여 40만두로 줄었다. 축산입국은 소가 있고 봐야한다. 당시의 소는 육류 수요뿐 아니라 농경용으로도 불가결의 동력원이었다. 그래서 광복 후의 미군정은 「축우도살금지법」을 공포하기도 하고 1949년에는 「축우도살제한법」을 공포하여 한우보호에 힘썼으며, 한동안 매주 수요일은 고기를 먹지 못하도록 무육일(無肉日)도 제정, 시행하였다. 그러나 밀도살만 성행할 뿐, 그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1960년대에 들어 군사혁명정부는 송아지가 태어나면 얼마씩의 장려금을 주면서 송아지 값을 높여 농가들의 사육의욕을 높이고자 매년 막대한 송아지 입식자금을 방출하는 적극적인 정책으로 돌아섰다. 이 시책이 주효하여 1960년대 말에 비로소 1백만두가 넘었고 1974년에 180만두 수준으로 증식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시책이라도 극소수의 탈선자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일부농가가 송아지입식자금을 받아 송아지를 입식하지는 않고 다른 용도로 사용한 모양이다. 그러한 사례는 여러 경로를 통해 청와대에 보고되었다. 그것도 몇 십배로 부풀려져 보고하게 된다. 이 보고를 받은 대통령은 진노하여 감사원으로 하여금 이를 엄정하게 감사토록 지시하게 된다. 그 무렵 본인은 축산국장이었다. 감사는 주로 밤에 이뤄졌다. 낮에는 소가 바깥에 나가 있기 때문이다. 감사는 입식자금대장과 실제 입식된 송아지 수가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A농가, B농가를 거쳐 C농가의 감사를 받을 즈음, 야음을 틈타 A농가의 소가 입식자금을 유용한 D농가로 옮겨지는 것이 감사원에게 적발되었던 것이다. 화가 난 감사원은 일단 감사 받은 소가 옮겨가면 알아차릴 수 있도록 감사를 거친 소는 소꼬리를 일부 잘라 표시하며 감사를 진행하였다. 참 희한한 발상이었다. 이통에 이를 두고 송아지의 단발령이라고 일컬어지던 때가 있었다. 쇠고기 파동과 최초의 쇠고기 수입 현재의 육류소비는 계절에 관계없이 평준화 되었지만 70년대에만 해도 계절에 따라 소비동향이 완연하게 변화하였다. 쇠고기는 풀을 먹이는 여름철에 소비둔화가 있었고 월별로는 윤달이 드는 달에 소비가 현격히 줄었다. 생일이나, 돌잔치, 제사 등 인생살이에 있어 중요한 통과의례(通過儀禮)가 1/4로 줄어드는 달이기 때문이다. 또 설이나 추석 등 명절에는 쇠고기가 집중적으로 소비되었으나, 이런 때에는 미리 쇠고기비축자금을 방출하여 미리 비축 해둠으로서 큰 어려움 없이 넘어갔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중동진출의 붐을 타고 경제가 고도성장으로 치닫자 육류소비는 빠른 속도로 소비촉진이 이루어져 어느새 쇠고기 품귀현상을 가져왔다. 단적인 예로 1975년 쇠고기 한근에 744원 하던 것이 1976년에는 1,063원으로 일년 사이에 43%나 폭등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물가인상의 책임을 몽땅 쇠고기가 떠맏게 된다. 당시는 안정성장을 위해 물가인상 억제가 중요한 정책과제였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농림부는 쇠고기 가격이 싼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각각 500톤씩의 지육(肢肉)을 수입하기에 이르렀다. 1976년 초의 일로, 유사 이래 최초의 쇠고기 수입이었다. 그러나 냉동육에 해동법(解凍法)을 몰라 어려움을 겪었다. 더욱이 언론은 수입쇠고기가 풀을 먹여 기른 소라 고기에서 풀냄새가 날 뿐 아니라 맛도 떨어진다고 연일 보도하는 것이었다. 모처럼 수입한 쇠고기가 팔리지 않자, 쇠고기수급도 안정시키지 못하면서 귀중한 외화만 낭비한 꼴이 되었다. 심지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수입육 소비홍보를 위해 시식회를 갖기까지 하였다. 당시 쇠고기 수입으로 1~2년간을 견뎌내면 쇠고기자급기반이 구축될 것으로 알았으나 그 것은 큰 오산이었다. 1978년의 쇠고기 자급율은 64.8%로 폭락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