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도 못해먹을 축산행정 � 김 영 진 한국농업사학회 명예회장 1. 제1차 우유파동의 원인 1971년말 낙농통계를 보면 전국적으로 약 3천호의 낙농가가 3만두의 젖소를 사육하여 48,000톤의 우유를 생산하였다. 국민 1인당의 우유소비량은 1.4kg으로 현재의 소비량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안되는 근근한 수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유파동이 일어났다는 것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파동의 직접적인 원인은 지난호에서도 밝혔듯이 현 H사의 전신인 한미합작 기업 M사가 만든 조제분유가 말썽이 되자, 농림부가 그 회사의 조제분유 제조허가를 취소한데서 비롯되어 그 회사가 낙농가의 납유량을 절반으로 줄였기 때문이다. 그 무렵 어려웠던 억대의 융자금을 주면서 전량 수유를 하면서 전지분유나 탈지분유를 만들라고 하였지만, 안팔리는 원유를 사서 어쩌라는 것이냐며 막무가내로 버티었다. 때마침 겨울철이라 시유가 팔리지 않아 가공여력이 있던 S우유나 N유업도 자체 수유량 이상으로 납유량을 늘릴 수 없었다. 당시는 우유소비시장이 시유 위주였기 때문이다. 납유를 못한 일부의 낙농가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종로 네거리에서 한바가지의 우유를 뿌려대며 언론에 그 광경을 보도토록 하였다. 또 모조합에서 산패된 우유를 하천에 방류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것이 신문에 알려져 다음날 조간신문에는 강물 전체가 우유로만 흘러가는 량 보도하였다. 나는 동네북이었다. 이렇게 되면 우유소비는 가속적으로 감소하게 된다. 남는다고 하면 보기만 매스꺼운지 마시던 우유마저 내팽겨치는게 우리 국민의 우유소비 행태이다. 대책 세우기에 바쁜 실무진들은 호통치는 관계요로에 불려다니며 진상해명에 더 바쁘게 된다. 불이 났는데 불은 끄지 않고 왜 불이 나게 되었다는 것을 해명하러 다니는 꼴과 같다. 희극적 비극이다. 2. 당시의 우유파동 대책 당시의 우유파동대책은 세가지였다. 우선 남아도는 우유를 국산유제품의 소비촉진, 그리고 분유형태로 가공하는 시설의 확대등이었다. 언제 멈출지 모르는 기존의 가공시설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안팔리는 시유는 초등학교 아동들에게 무료급식을 실시하였다. 남아돌아 상하는 우유를 버리면서 사회의 지탄을 받느니 비용을 더 들여 무료급식을 시키고 공병(당시는 병우유)이나 달라는게 낫겠다 싶었다. 이즈음에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었다. 당시의 서울시 H교육감에게 대상학교를 지정해달라고 하였더니 “겨울철에 찬 우유를 마시면 아동들이 설사를 하기 때문에 필요없다”라며 비협조적으로 나온 것이었다. 할 수 없이 공장인근의 초등학생들에게 하루 8만병씩을 무료급식하였더니 숨통이 트이면서 버리는 일들은 사라졌다. 다음으로 무상원조로 WHO가 주는 구호분유를 차단시켰다. 보건복지부가 맹열히 반대하였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단번에 근절시켜버렸다. 6.25 동란 후 수많은 고아원에 무상으로 지원하던 구호분유가 대부분 빼돌려져 시장으로 유출됨으로서 어찌보면 구호분유가 우유파동의 주범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전국의 축산직 공무원을 시켜 각 지방 고아원의 고아수를 세어보니 보건복지부 숫자의 반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후일 10대 국회의원(전국구)이 된 보건복지부 부녀아동국장이 고아원의 핏덩이들은 어쩔 셈이냐고 여성 특유의 악을 쓰며 본인의 사무실에서 소란을 피울 때는 나도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낙농가도 살려야 했다. 사람도 비행기 타기가 어려웠던 시절 일부 젖소는 항공을 통해 들여온 것들이며 그 젖소가 농가에 입식될 때는 “수입젖소 환영”이란 플랭카드까지 준비하에 군수, 서장이 참석한 환영행사에서 VIP 대접을 받으며 트럭에서 내려진다. 그러한 젖소를 떠받들며 살아온 낙농가들을 살려야 했다. 1972년 2월 1일부터 한달간 전국적인 우유소비 캠페인이 실시되었다. 보도매체 활용과 가두홍보, 선전탑과 홍보전단배포 등이 주 활동사항이다. 거리의 요소마다 병우유를 쌓아놓고 축산공무원이나 유업체 직원들이 지나가는 행인에게 한병씩 권했지만 배고픈 구두닦이나 재건대원들만에게만 환영이었다. 돈 주고 사먹을 소비층인 옷 잘입은 귀부인들은 마시기는 커녕 아래, 위로 훑어 보기까지 하였다. 홍보전단 배포는 「우유를 마시면 예뻐진다」, 「우유를 마시면 머리가 좋아진다」 등 다소 알쏭달쏭한 문구도 서슴없이 활용되었는데 이 역시 효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가장 효과가 컸던 방법은 그 무렵 새로 생긴 흑백TV방송을 통해 산부인과 전문의들이 우유의 가치와 섭취필요성에 대해 홍보하도록 한 것이었다. 그 효과는 가시적이었다. 아니, 그렇게 클 줄은 몰랐다. 2월 1일 서울시내에서 판매되던 병우유(시유)는 24톤이었는데 2월말에는 그 2배에 가까운 46톤이 판매되었기 때문이다. 홍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하게 된 사례였다. 3. 낙농은 천수답 농사인가? 이렇게 된 우유파동은 3개월만에 깨끗이 해결되었다. 이후에는 아예 모자랐다. 어린이들에게 마시도록 홍보한 것이 정력제도 아닌 우유를 어른들까지 마시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당시의 낙농은 꼭 천수답농사를 짓는 것 같이 소나기 한차례 오면 홍수나고 일주일만 가물면 논바닥이 갈라지는 것과 같았다. 당시를 회상할 때 잊을 수 없는 일이 있다. 대일청구권자금으로 분유가공 설비를 S우유에 증설코자 어느 기종을 주문한 바 있었는데 계속 선적이 미뤄지고 있었다. 내용을 추적한 바 일본 D사 한국지점이 당시의 여당 재정위원장 K씨에게 이차저차 하여 K씨가 D사의 물품을 납품토록 돕고자 한데서 문제가 발생되었다. 울화가 치민 나는 후일 가축위생과장이 된 L사무관과 같이 재정위원장실을 찾아가 이 사실을 전국의 낙농가에게 알리겠다며 통큰 협박을 한 것이다. 평생 처음해본 협박이 그렇게 효과가 나타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