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도 못해먹을 축산행정 &#65533; 김 영 진 한국농업사학회 명예회장 1971년 7월 5일, 같이 일하던 직원의 돌연한 변사(變死)로 신세 졌던 분들이 외국에 간다기에 김포공항 대합실에서 그들을 전별하는 중이었다. 천정에서 소란하게 울려 퍼지는 앰프방송은 정오뉴스였다. 언뜻 듣기에 농림부 인사이동을 발표하는 도중 축산국장에 본인의 이름이 거명되는 것 같았으나 잘못들은 것 같아 이내 잊고 말았다. 환송을 끝내고 공항청사를 나오다가 우연하게도 후일 한국냉장 부사장을 지낸 당시의 농림부 인사계장 N씨를 만났다. 그는 방실거리며 나의 축산국장 전임을 축하한다는 것이었다. 잘못 들은 것으로 알았던 전직(轉職)이 사실로 확인되자 소심한 본인은 겁이 덜컥 났다. 본인은 작물과 원예를 공부하였고 바늘구멍 만한 기술고시도 요행히 농학과목으로 통과한 터라 본인 인생의 스케줄에 축산업무가 끼여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굳이 축산과 본인의 학문적 인연을 든다면 1961년 1년여간 미국에서 초지학을 공부하였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3년간 시험장에서 초지연구를 하며 서울대에서 사료작물 강의를 하였으며, 그때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것이 전부이다. 축산행정은 축산을 전공하고 다년간 축산직에서 잔뼈가 굵은 노련한 행정가가 맡아야 할 자리이다. 당시의 우리 축산은 전환기라기 보다는 급성장하는 격변기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에 없던 행정체계를 안개속을 헤치듯 새로히 세워가는 어려움이 있는데다 당시의 축산국은 터가 세다고 정평이 나있던 곳이었다. 축산직과 수의직의 보이지 않는 암투가 있었고 그 틈새를 노리는 행정직들의 돌출행위가 있어 국장자리는 빈번히 인사이동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농림부에서 역대 축산국장을 하던 분들이 단 한번도 그 이상으로 농림부에서 승진한 분이 없었다. 더구나 나는 축산계통에 잘 아는 인맥도 없는데다 솜털 바듯이 벗은 나이 40의 애송이면서 해방 후 졸업생으로는 처음으로 축산국장이 되었으니 서울이 무섭다고 과천서부터 기는 꼴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축산국이 터가 제다고 하는 뜻은 아마도 축산업 자체가 키워서 잡아먹거나, 쥐여 짜먹거나, 깨어 먹거나 하는 거친 풍토에서 연유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축산국장직을 맡게 된 까닭은 사고 뒤처리를 위해 밀려서 간 것이었다. 당시의 조제분유 제조기술은 유년기 이전의 요람기였다. WHO의 구호분유가 넘치는 세 회사가 소량의 조제분유를 만들고 있었다. 그중 한 회사의 제품을 검사한 결과 첨가제 함량이 심히 균형을 잃어 이것이 문제화 되면서 중앙 일간지는 물론, 지방신문까지 연일 대서특필로 보도되는 것이었다. 그 요지는 조제분유는 어린이 식량인데 2세 국민의 건강을 해치는 엉터리 제품을 만들었다며 회사는 물론 감독부서인 농림부까지 싸잡아 비난해버린 것이다. 신문은 본시 부풀리는게 그 생리라지만 분유라기 보다 독약같이 빈정거린 신문들을 보고 국산조제분유를 먹일 부모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통에 당시의 장관이 공개사과문을 한 신문에 발표하면서 애꿎게 행정직이던 당시의 국장이 산하 관서자리를 옮기면서 네사람의 국장급이 연쇄이동 하면서 국립부산생사검사소장이던 내가 축산국장으로 가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되어 축산국장 5년을 포함하여 축산을 담당한 식산차관보까지 7년간, 그리고 퇴직 후 유가공협회장 3년간 등 도합 10년간 코가 열 개라도 숨가쁜 고난의 행진이 시작된 것이다. 국장으로 부임하자마자 첫째로 부딛힌 어려움은 업무 때문이 아니라 전임자때의 빚청산 때문이었다. 조제분유 때문에 장관이 낸 사과광고는 광고예산이 없어서 한 신문에만 의뢰하였는데 다른 일간지들이 제멋대로 이를 그대로 1면 광고란에 게재해 놓고 광고료를 내놓으라고 들볶는 것이었다. 이치대로라면 당사자의 동의 없이 신문사가 임의로 개재한 광고료란 있을 수 없는 것이지만 “달라는 놈과 먹자는 놈한테는 당할 수가 없다”는 옛말이 있드시, 상대가 무관(無冠)의 제왕인 언론사인데 장관인들 안주고 배길 재간은 없었다. 업계와는 일면식도 없었고 엉터리 분유를 만든 원인 제공회사는 조제분유 제조허가가 취소되어 초상집인데 그쪽에 전가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정부의 홍보비는 진작 바닥이 났기 때문에 당초 한 개의 신문에만 광고를 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엄청난 액수의 광고료였다. 나는 평소 신문사는 구독료로 운영되는 줄 알았지만 이 일을 겪으면서 신문사의 운영비 대부분이 광고료에서 조달된다는 이치를 비로서 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 언론계의 어느 집에 문상(問喪)을 갔다. 그 자리에서 만난 퇴직한 관계(官界) 선배들의 협조와 주선으로 이리저리 둘러대어 금후의 축산계 광고와 연결짓기로 하고 급한 불을 끌 수가 있었다. 연말 경이 되자 낙농을 맡은 C과장이 사색이 되어 본인을 찾아 왔다. 그는 과장이지만 본인의 대학은사와 농고 동기생인지라 선생님 대하듯 하는 사이였다. 찾아온 까닭인 즉슨 낙농가들이 생산한 원유를 유업체에 납유를 하지 못하고 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직접적 원인은 한미합작인 문제의 그 조제 분유회사가 갑자기 집유구역의 집유량을 반으로 줄인 것이 화근이었다. 우유는 상온에서 4시간이 지나면 산패(酸敗)되는 고로 낙농가의 입장에서는 애가 타기 마련이다. 더구나 날씨가 추워지면서 시유소비량이 줄어들어 서울우유나 남양유업에서도 집유량을 더 늘릴 수가 없었다. 기존의 집유량도 소비가 줄어들어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분유를 만들어 오래 보관하자면 건조시설이 필요한데 이미 설치된 시설들은 24시간 가동중이라서 더 받을 여력이 없었다. 아니, 현상태로도 기계가 고장나면 수리하는 동안 자신들의 집유량도 일부 폐기할 수 밖에 없었다. 미칠 노릇이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