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보는 혜안이 필요하다 최 기 수 농수축산신문 편집국장 얼마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영어사전인 ‘웹스터’에 ‘agritourism(애그리투어리즘)’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등재됐다. 애그리투어리즘은 ‘농촌을 찾아 체험도 하며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관광’을 말한다. 농촌은 목가적(牧歌的) 풍경을 떠올리게 하고, 목가적인 풍경의 대명사는 초원에서 얼룩박이 젖소가 풀을 뜯는 목장, 바로 낙농이다. 낙농은 축산업의 꽃이라고 불린다. 사람과 기술, 기자재가 하나로 합쳐져 오케스트라를 울리게 하는 게 바로 낙농이다. 목가적 농촌의 대명사요 축산업의 꽃인 낙농산업이 최근 대내외적 여건변화로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수년전부터 유제품 소비감소 속에 원유 생산이 소비를 초과하는 수급불균형 현상이 발생, 원유생산량을 줄여야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10년 전인 1996년 2만 1,000명의 낙농가가 55만 1,000마리의 젖소를 사육하던 국내 낙농산업은 낙농농가 수가 지난해 말 9000호 밑으로 떨어졌고, 젖소 사육두수도 지난 6월말 현재 47만 1,000두로 감소했다. 여기에다 우루과이라운드협상 타결에 따른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및 1997년 유제품시장의 완전개방으로 값싼 수입 유제품이 국내시장을 속속 잠식하고 있다. 유제품 소비는 감소하는 가운데 값싼 수입 유제품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물밀 듯이 몰려들어오고 있으니 국내 낙농산업은 위축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2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시작돼 이달 6일부터 9일까지 미국 시애틀에서 3차 협상이 열릴 예정으로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돼 국내 낙농산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혼합분유에 대한 관세가 철폐될 경우 잉여원유 가격과 원유생산 감소를 불러와 국내 낙농산업은 연간 460억원에서 750억원의 피해를 입을 것으로 분석했다. 낙농산업은 바람 앞의 등불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협상에서 쇠고기와 돼지고기, 유제품 등 33개 품목을 관세철폐 시 피해가 큰 민감품목으로 정해 관세철폐 시기를 늦추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낙농산업의 피해는 불가피해진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제품의 관세철폐 시기를 몇 년 늦춘다고 해서 낙농산업의 피해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처럼 긴박하게 돌아가지만 국내 낙농산업계와 당국은 현안인 집유체계 개편문제에만 몰입하는 모습이라고 하면 과언일까? 국내 낙농산업계와 당국은 현안해결과 함께 앞으로 닥칠 낙농산업의 변화를 중시하고,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데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난 2002년 출판돼 지금까지도 인기리에 팔리고 있는 자기개발서인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는 주변상황의 변화에 따른 자신의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은 앞으로 닥쳐올 변화에 대해 전혀 준비를 않았고, 현실의 변화마저 수용하기를 거부한 인간을 닮은 아주 작은 동물인 ‘햄(Hem)’과 ‘호우(Haw)’가 어느 날 갑자기 치즈가 사라지자 쏟아내는 불평과 불만, 사라진 치즈가 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치즈가 없어진 후 겪는 굶주림 등의 과정을 거쳐 더 이상 버티긴 어려운 극한 상황에서 성공과 행복을 상징하는 치즈를 찾아 나서는 변화의 과정을 실감 있게 그리고 있다. 국내 낙농산업계의 현 주소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의 햄과 호우와 같은 상황이라고 하면 잘못된 표현일까? 현재와 같은 상황으로는 국내 낙농산업의 밝은 내일을 보장받기 어렵다. 그동안의 관행과 시장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낙농산업을 둘러싼 주변여건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고, 이 시각에도 계속되고 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보고,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앞으로 전개될 낙농상황 변화를 먼저 읽고, 이에 맞게 대응하는 낙농가만이 밝은 내일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낙농가, 당국, 전문가들은 낙농산업이 안고 있는 현실문제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앞으로 5년 후, 10년 후, 20년 후, 1세대 이후를 내다보는 혜안(慧眼)을 갖고 대응책 모색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