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희망적인 이야기는 없는가 문 종 환 낙농육우신문 편집국장 벌써 축산업계에 발을 들여 놓은지 23년쯤 되는 것 같다. 푸른 초원위에서 말을 달리며 소 떼를 몰 것이라는 착각 속에 축산과를 지원했고, 별 재주도 없으면서 글쓰기에 조금 뜻이 있어 학보사에서 신문을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원죄(?)로 사회 첫 출발도 지금은 없어진 ‘월간 종합축산’에서 시작했고, 이를 기회로 ‘축산신문’ 창간 멤버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0여년 넘게 양록협회 등 사슴분야에서 몸담아 오다 1년전 ‘낙농육우신문’을 창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어쩌면 젖소보다는 사슴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20여년전 낙농업을 상기하면서 현재 낙농정책을 위시하여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목하 노력 중이다. 기억하기로 20여년전에는 낙농가 수가 4만호에 이르렀는데 현재는 9천호로 77.5%의 낙농가가 사라졌다. 이유야 많겠지만 우루과이라운드(UR)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판단된다. 지금도 낙농선진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앞두고 위기의식을 느낀 나머지 낙농인들의 이탈이 잦다. 20여년전 가장 중요한 이슈는 낙농진흥법이었다.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낙농지도자들이 열정을 쏟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당시 낙농진흥법이 국회만 통과하면 한국낙농은 탄탄대로를 걸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지난 1997년 국회를 통과한 낙농진흥법은 결국 강제력이 약해 2002년 ‘잉여원유차등가격제’ 적용을 기화로 가공시설을 보유한 낙농협동조합들의 진흥회 탈퇴로 절름발이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결과 지금까지 4년여에 걸쳐 보다 항구적인 낙농안정화를 위한 제도개편이 논의 중에 있으나 정부의 정책목표 부재와 이해주체들 간의 의견대립으로 아직도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를 종합할 때 현재 낙농업계의 최대 이슈는 우유수급안정화를 위한 낙농제도 개편과 낙농선진국과의 FTA 협상 등 두가지로 압축된다. 이 과정에서 한국낙농이 곧 망할 것 같은 위기의식이 낙농인들을 휘감고 있다. 세미나나 심포지엄, 일부 전문지 등에서는 낙농인들을 불안케 하는 발표가 끊이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희망적인 이야기는 없고 불안감만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지난 5월 한국낙농육우협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한 낙농가가 “세미나 등 모임에만 참석하면 불안하다. 정말 낙농을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다가도 집에 돌아와 젖소만 보면 온갖 시름을 다 잊는다”고 심각하게 말했다. 미래의 불안감 조성이 곧 현실의 생업까지도 흔들리게 하고 있는 실증적 사례다. 반면에 충남 당진에서 묵묵히 젖소만 기르는 한 낙농가는 “지금 이대로가 좋다. 아무런 변화 없이 지금 이 상태로 낙농업이 지속됐으면 바랄게 없다”고 피력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낙농이 곧 망할 것이라는 일부 의견과는 달리 너무도 상치된 말이 아닐 수 없다. 아마 낙농제도 개편이라든가 한미 FTA 등과는 별 상관없이 앞만 보고 젖소를 기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을 갖고 젖소를 기르는 낙농가가 상당수에 이를 것으로 짐작된다. 오히려 대내외 활동이 활발한 낙농가는 불안해하고, 묵묵히 젖소만 기르는 낙농가는 태평해하는 아이러니가 교차하고 있다. 낙농가가 불안해하든, 태평해하든 낙농제도 개편은 업계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지 오래다. 문제는 낙농제도 개편을 위해 이해주체들이 얼마나 희생을 감내하고 미래 한국낙농의 그림을 최대한 완벽하게 그려내느냐에 있다. 그것은 작게는 묵묵히 젖소를 기르는 다수 낙농인에 대한 예의요, 크게는 역사 앞에 죄를 짓지 않는 행위이다. 낙농제도 개편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해주체는 낙농육우협회, 집유조합장협의회, 유업체로 대별된다. 총론에서 협회와 집유협은 전국단위 제도개편에는 공동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농가개인쿼터조합총량제’와 ‘조합총량제’ 등을 놓고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다수의 낙농가는 ‘농가개인쿼터조합총량제’를 원하는 반면 집유조합장들은 ‘조합총량제’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협회는 독자안을 내고 농림부와 수차례 논의를 통해 ‘농가개인쿼터조합총량제’를 합의한 반면에, 집유협은 집약된 의견 없이 관망만하다 이제와서 ‘조합총량제’ 등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집유조합장들은 먼저 총회나 이사회를 거쳐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후 이를 공론화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집유조합장들은 이러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조합총량제’를 주장하기에 앞서 조합원들의 의견을 먼저 수렴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유업체들은 지난해 농림부가 발표한 내용대로 제도가 집행되기를 바라고 있다. 낙농가와 유업체는 수직관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 종속관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낙농가들은 낙농제도 개편을 기회로 유업체와 수평적 관계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낙농 백년대계를 위해 유업체들은 일정부분 양보를 통해 이번에 낙농제도 개편이 원만히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해야 한다. 언제까지 종속관계이어야만 하는가. 일본도 낙농가와 유업체간에 수평적 관계로 전환될 때 유업체들의 반발이 무척 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의 중재와 유업체들이 낙농가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면서 원만히 합의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유업체들은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낙농제도 개편과 더불어 낙농가를 불안에 떨게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미국 등 낙농선진국과의 FTA다. FTA가 체결되면 한국낙농은 곧 망할 것 같은 분위기가 그동안 업계를 지배해 왔다. 그러나 FTA는 협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산업의 명운이 갈린다. 우리는 지난 UR협상의 실패를 교훈삼아 대비해야 한다. 현재 한미 FTA를 극렬 반대하고 있는 분위기를 끝까지 밀고 나가되, 만에 하나 타결될 경우를 대비해 정부당국자와 긴밀히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낙농가들은 FTA에 너무 겁먹지도, 방심하지도 않았으면 한다. 사석에서 낙농업계를 훤히 꿰뚫는 어느 분이 이렇게 말했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국내 낙농업이 곧 망할 것 같지요? 어느 정도야 농가축소 등 피해는 있겠지만 폭삭 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낙농업이 망하면 관련 업체도 망하는데 모두들 뒷짐 지고 가만있겠습니까?” 그렇다. 20여년전에도 낙농업은 어려웠다. 지금도 낙농업을 둘러싼 환경은 암울하고 불투명한 미래이지만 단군이래 원유가는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앞으로 낙농제도 개편을 합리적으로 이끌어 내고, FTA의 파고를 슬기롭게 극복한다면 한국낙농은 또 한번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것이다. 결국 한국낙농의 미래는 낙농가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