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시대의 한국 축산업 이 정 환 GS&J인스티튜트 이사장 ’90년대 이후 우리나라 축산업은 어느 분야보다 크게 발전하였다. 우루과이라운드 타결과 외환위기의 충격을 겪으면서도 산업규모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고 규모화와 수직통합을 통해 다른 어느 부문보다 빠르게 구조조정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생산의 효율성이 향상되고 경쟁력도 그만큼 향상되었다. 이 같은 성장과 발전은 우선 축산물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특히 고급화되면서 우리나라 축산업의 시장 규모가 꾸준히 늘어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었던데 있다. 또한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비록 관세율은 낮아졌지만 외환위기로 환율이 급등하여 수입 축산물의 가격을 큰 폭으로 상승시키는 요인이 있었던 것도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위한 협상이 전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축산부문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여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앞서 우리나라 축산업을 둘러싼 환경은 이미 매우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었다. 그 변화는 첫째, 축산물의 수요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거나 도리어 감소하는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래 어떤 농축산물이나 경제발전에 따라 수요가 급증하다가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수요가 정체하고 드디어 감소하는 단계에 진입하는 이른바 ‘수요의 라이프사이클’을 가지고 있는데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로 이 ‘라이프사이클’ 현상이 좀 더 당겨지고 있다. 두 번째 환경변화는 환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수입 축산물의 가격을 하락시키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미 환율이 달러 당 950원대로 떨어졌지만 앞으로 무역흑자가 계속되는 한 환율은 하락한다고 보아야 하고 이것은 ’90년대의 환경과는 판이한 것이다. 세 번째는 환경문제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축산업에서 배출되는 분뇨의 양이 우리나라 농지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고 지역에 따라서는 매우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 축산업이 이러한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환경문제로 이제까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시련을 겪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농업과 농촌의 가치는 농축산물을 생산하는 것보다 모든 국민이 쉬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데 있고, 그러한 가치를 훼손하는 활동은 설 자리를 잊어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나라 축산업은 산업으로서 두 가지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 먼저 수입사료 의존도가 높아서 생산액 중에서 국내에 귀속되는 부가가치 비중이 30% 수준에 머물고 중소가축일수록 그 비중은 더 낮다. 따라서 생산액으로는 농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6%가 되지만 부가가치로 보면 12%, 고용비중으로는 9%로 낮아진다. 즉 생산규모에 비해 정치사회적 중요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며 이런 점이 세계화 과정에서 정치적 약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상과 같은 도전에 비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충격은 작은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현재 축산물의 관세가 쇠고기는 40%, 돼지고기와 닭고기는 22.5%이므로 설령 관세가 철폐된다하더라도 수입가격이 18~29% 하락하는 영향을 나타낼 것이다. 축산물의 품질과 브랜드에 따른 가격 차이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관세감축이 우리나라 축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작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우리는 ’90년대에 쿼터 철폐와 관세 감축의 충격을 딛고 오늘에 이르러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고려한다면 축산업은 확실하게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여 실천해나감으로서 쾌적한 농촌 환경을 국민에게 제공하고, 품질과 안전성을 확실하게 담보할 수 있는 상품을 소비자에게 공급하는데 최우선의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축산업계는 이제부터 과거와 같은 양적 성장을 지양하고 최적규모를 향해 과감한 생산조정을 추구하는 한편, 좁은 국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말고 가장 효율성 높은 글로벌 공급체계를 만들어 나가는 방향으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 한미자유무역협정 때문이 아니라 축산업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90년대와는 판이하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