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트 송충이는 솔잎 먹고 살아야 글｜박창수 그림｜성주삼 아이구 이 나라 우수운 꼴이 한 두 가지 인가유. 엊그제는 오만원 신권 받으려구 은행앞에서 줄을 서서 몸싸움을 하고 난리가 났다고 하더구먼유. 그 오만원 신권 모셔두었다가 몇 십 년 후에 비싸게 팔려고 그러는 건지. 아니면 돈이 남아 돌아서 돈 자랑 하려구 그러는 건지 아무리 봐도 모를 일이여유. 날도 더운데 왜 서민들까지 저 난리를 치고 그런는지 모르겄다니까유. 요즘 같어서는 TV 보는 것도 싫어졌다니까유. 뭐 하나나 좋은 일 기대가 되는 일이 있어야지유. 거시기 수퍼댁은 걱정이 많더라구유. 이천 원 삼천 원 짜리 물건 사면서 오만원 짜리 갖고 오면 허구헌날 잔돈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이라구유.” “그래도 손님만 많으면 좋은 거지 뭘 그려. 은행 가면 잔돈이야 얼마든지 바꾸어주잖어. 엊그제 우리 대학동기가 전화 왔더라구. 집 지을만한 땅 있으면 알아봐달라는데 누가 팔아야지 소개를 하던 말던 하지. 여기 땅값이 워낙 똥값이다 보니 몇 푼 받고 파느니 차라리 묵히더라도 안받겠다고들 하잖어” “땅 사서 전원주택 짓고 내려 오겠다는 거유. 누군지 모르지만 그래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나 보네유. 이 촌구석에 들어와야 돈 나올 구멍이 없는데 말년 보내려고 여기로 온다면 안그려유?” “정년퇴직 했으니까 연금 나오겠지 뭐. 그리고 살던 집 팔아서 내려오면 앞으로 30년은 살수 있겄지. 말로는 아들 딸 시집 장가 보내느라 집 담보로 은행대출을 많이 받아서 집 팔면 절반도 안남을 거라고 하던데 그래도 서울 이니까 집 팔면 돈 좀 남겄지” “남들은 집 팔어서 노년 준비하는데 우리는 집을 판다고해도 산다는 사람이 없을 거유. 이런 촌스러운 집 누가 사겠어유.” “아니 누가 산다고 하면 팔 거여. 갑자기 뭔 놈의 집 타령 돈 타령여. 늙어서 남 눈치 안보고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이렇게 배 속 편안하게 사는 것도 복이라구. 아무리 비싼 아파트라고 해도 그 답답한 도시에 가서 살으라고 하면 나는 안간다구” “당신이야 그러겄지유. 평생을 살다시피한 여기 만큼 편안한 데는 없겄지유. 나는 안그려유. 그래도 깨끗한 도시 아파트서 하루라도 살아봐야 속이 시원할 것 같네유. 소핑도 하구 사람구경도 좀 하구. 아이구 여기같이 답답한 데가 또 어디 있어유. 몇 십년을 감옥살이 하고 살었는데 .....,” 더 이상 말 길어지면 부부싸움 되겠다 싶어서 민자씨는 밖으로 나왔다. 기울어진 초승달을 보면서 민자씨 마당 한가운데 있는 평상에 앉아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노후가 참으로 고민스러웠다. 병원도 멀고 인적도 드문 산골에서 남편 얼굴만 쳐다보며 노년을 보낼 생각을 하자니 한마디로 갑갑했다. 그렇다고 모든 것 다 팔아 도시로 나간다 해도 이미 오를 대로 오른 도시의 아파트 한 채도 장만 못할 판이니 결국에는 갈 곳이 없는 셈인 것이다. 방법은 오직 한 가지 자식들한테 가서 기대는 것인데 요즘 젊은 자식 며느리들 중 그 누가 늙은 부모와 같이 살겠다고 선뜻 나서겠는가. 마당을 거닐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전화기를 들고 나왔다. “큰 애여. 받어 보라구” “이 밤 중에 뭔 일 이래유.” 그녀는 거실로 들어와 수화기를 건네받았다. 남편은 졸린 지 하품을 하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그려 엄마여. 이 한밤 중에 무슨 일여” “그냥 엄마 목소리 듣고 싶어서 했지요”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겄구먼. 니가 어쩐 일로 그런 소릴 다하냐. 술 한잔 마셨냐?” “예, 오늘 회사에서 회식 했어요. 이제 집에 들어가는 길입니다” “경기가 안좋다는데 뭔 회식을 한다냐. 그건 그렇구 별일은 없어?” “좋은 일 있지요. 무슨 일 일까요? ” “얘가 진짜 술 많이 마셨구먼. 평소 안하던 코맹맹이 소리까지 하구. 뭐여. 말해보라구” “저-기, 엄마, 있잖어 거시기 그러니까.....,” “얘가 왜 이러는 겨. 내일 모레면 사십 다 될 놈이 애들처럼 왜 이려. 아 나 속 터지니까 빨리 말혀. 가뜩이나 앞으로 살 생각하니 답답하기만 한데” “글쎄 엄마, 제가 내일 모레 차장으로 진급 한다구요. 그래도 우리 회사 동기들 중에는 제일 먼저라니까요. 어때요? 거시기 엄마 아들 잘 났지유?” “뭐여, 차장 된다구. 아이구 잘됐네. 근데 어제 애미하고 전화할 때는 그런 소리 안하던데. 너 사실인 겨. 엄마 놀려먹는 것 아니겄지” “진짜라니까유. 아니 그런데 엄마야 말로 무슨 일 있어요. 앞으로 살 일이 답답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어요?” “야 나라고 평생 이 촌구석에서 늙어가야 하냐. 노후 대책을 세워야하는데 답이 안나오잖어” “참 엄마도 별걸 다 걱정한다니까. 걱정 말어요. 이 장남이 다 책임집니다. 엄마 모시고 살려고 보험도 들고 적금도 들고 있으니까” 갑자기 아들의 전화가 뚝 끊겼다. 다시 걸까 망설이다. 늦은 시간인데다 술 마셔서 그런가보다 싶어 민자씨는 잠자리에 누웠다. 아무리 몇 번씩 다시 생각해봐도 아들이 기특하기만 했다. 나이 들면 큰아들이 제일 든든한 기둥이라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무슨 보험과 적금을 얼마나 들었기에 걱정을 마라는 걸까? 언제쯤 되어야 넓은 집 사 놓고 서울로 올라 오라고 할까? 밤새 궁금해 하면서도 아무튼 아들 키워놓은 보람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튿날 아침 목장댁 오민자 여사는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애미야 축하헌다. 엊저녁에 성민애비 전화 받었다. 차장 된다면서” “네, 저는 내일모레 승진 정식대로 하고 난 다음 전화 드리려고 했는데....,” “그게 뭔 말여. 진작 얘기를 혀야지. 성민애비 성실하잖여. 월급도 좀 오를테고 여러모로 잘됐어” “월급도 월급이지만 요즘같이 평생 직장 없는 시기에 승진하니까 그냥 좋아요” 민자씨 이쯤에서 며느리에게 은근 슬쩍 궁금증을 털어놓았다. 속으로는 기분 좋은 답변을 기대하면서. “그나저나 애미야, 애비 말로는 우리 위해서 보험도 들고 적금도 넣는다고 하는디 그게 무슨 말여” “어머 세상에 애 아빠가 말씀드렸어요. 아이구 그이는 참 주책이야 진짜.” “애미야, 주책은 무슨, 어찌됐든 니들이 우리 생각을 그렇게 하니 말이라도 고맙다 ” 그런데 그다음 며느리의 대답이 그만 민자씨를 기가 막히게 했다. 아니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것 같았고 큰 아들 두 번 믿었다가는 칠십도 못살고 쇼킹사로 죽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느리가 하는 말이 “아이구, 어머님 그 정도야 당연하지요. 그거 있잖아요. ‘묻지도 따지지도 마’ 하면서 광고하는 2만 원 짜리 암보험요. 그거 어머님 앞으로 하나 들었는데 이제 세 번 들어 갔구요. 적금은 애아빠 거래은행에서 적금하나 들어달라고 하도 사정해서 효도적금 5만 원 짜리 두 개 들어 놨는데 하나는 어머님, 그리고 하나는 저희 친정엄마 앞으로 들었어요. 이제 두 번 들어갔어요. 이 정도는 당연한 거죠. 사실은 더 큰 걸 해야 되는데 .....” 5만 원 짜리 적금과 남들 다 듣는 그 작은 보험 하나 들어놓고서 노후 걱정을 말라고 한 아들을 생각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괘씸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다. 그리고 민자씨 이런 결론을 내렸다. 노후는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마동목장서 남편과 곱게 건강하게 늙어가는 게 그래도 최선책이라고. 송충이는 솔잎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