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현대사회에서의 소농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성 경 일
강원대학교 동물생명과학대학 교수

 

1. 농업의 다수는 소농

 

세계 각 나라는 국가의 경제성장을 위하여 글로벌 스탠다드나 세계화를 가속화시키고 있으며 선진국 주도의 단일경제시스템을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농업에서도 집중화, 균일화 및 현대화 등의 대규모화에 의한 대량생산 방식이 농촌과 농민이 잘 살사는 것에 직결된다는 명분하에 예외 없이 진행되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많은 나라에서 곡물 가격이 두 배에서 세 배까지 올라, 이로 인해 일부 국가에서는 정부가 붕괴하고, 격렬한 데모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몇몇 분석가들은 식량위기의 원인을 세계적인 농업연료의 수요 증가와 지구 온난화로 보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위기는 수년 동안 국내에서의 식량 생산을 얕잡아 본 어리석은 정책들 때문인 것도 있다. 농민들은 다국적 기업을 위해 현금작물을 생산·판매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먹을 식량은 오히려 세계 시장에서 구입하게 되는 웃지 못 할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최근 20~30년 동안 세계은행과 IMF, 그리고 아주 최근에 WTO까지 식량 생산에 투자를 줄이고, 소농들과 영세농민들에 대한 지원을 줄일 것을 강요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에서 중요한 식량 생산자들은 소농이라는 것을 여러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우리나라의 영농규모별 농가특성을 보면 1ha 미만의 영세소농가(소농)의 비중은 1998년에 36.8%에서 2003년에는 24.0%로 줄어든 반면 5ha를 초과하는 대규모농가 비중은 같은 기간에 2.5%에서 7.7%로 크게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ha 미만의 소규모농가 비중이 전체의 59.1%로 우리나라 농업규모는 소농이 아직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영농규모별 농가 간 소득을 보면 1ha 미만의 소농은 1998년에 비하여 2003년에 16% 상승하였지만, 5ha 이상의 농가(대농)는 22.4% 상승하여 소농보다는 대농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 증가율을 보였다. 영농규모 측면에서도 저소득층은 소농에서 많았으며, 고소득층은 규모화된 대농에서 높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특히 저소득층 농가의 특성을 보면 저소득농가 중 77.2%가 2ha 미만의 소농에 집중되어 있으며, 경영주의 연령이 낮더라도 소농 일수록 저소득층농가 비중이 높아, 영농규모화와 농가소득 간에 상관관계가 높았다. 요약하면 농가소득은 대농에서 높았으며, 2ha 미만의 소농일수록 저소득층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농가규모는 소농이 다수임을 알 수 있다.

상공업중심의 산업국가로서 발전해 온 일본도 우리나라와 농업여건이 비슷하여 우리보다 훨씬 앞서 농업의 전업화, 규모화가 진행되어 왔다. 이를 위해 생산성, 경쟁력이 낮은 생업(산업)은 점점 줄이거나 없어져야 했으며, 농업도 예외없이 돈을 벌기 위하여 규모 확대라는 대농을 지향해 왔다. 그러나 일본사회는 고도의 산업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의 농가가 남아 있으며, 2차세계대전 전에 550만호였던 농가수가 1980년대에도 400만호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이 소농이라고 한다. 결국 우리나라와 일본은 물론 대부분 국가의 농업이 아직도 소농이 중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나 일본 모두 결국 농가 소득이라는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농가의 전업화, 규모화가 효율적이다. 그러다보니 다수 소농의 토지를 소수의 대농(상업농)이 소유하여 국제경쟁에 대항할 수 있는 근대적 기계화 농업, 균일화 농업을 지향하고 있다. 또한 농산물시장 자유화와 공산물제품 수출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다는 논리하에 농업정책의 주정책이 이것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어 왔다. 그런데 지금의 농업농촌의 현실은 어떤가? 오늘도 우리의 농업농촌은 여전히 어렵다고 하고 환경오염, 파괴 등의 문제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동시에 농촌의 과소화, 고령화는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WTO·FTA로 시장개방이 가속화 되고 있는 가운데 농가소득 증대를 위한 뾰족한 대책은 없어 보인다. 실제로 농업의 어려움이 국가경제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음을 우리는 지금 생생히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농가의 대다수가 소농인데 농업정책은 대농중심으로 진행되어 일부 소수의 대농만이 소득을 올리는 농업근대화의 모순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여기서 우리는 농업문제를 추상적으로 논하거나 미루거나 하지 말고 진솔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정말 우리나라에서 근대화 농업을 위해 소농은 극복되어야 할 대상인지, 또 우리나라와 같이 한정된 토지와 계곡이나 산지가 많은 지형에서 정말 대농위주의 농업이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지구상의 인구분포면에서 우리나라와 같이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은 집약적 농경지역이고 소농이 주를 이루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대농이 농업발전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지, 화페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농업의 또다른 가치를 너무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농업관련 학자와 공무원 그리고 경제학자 모두가 진지하게 검토할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2, 소농의 소중한 가치
 
농업농촌은 다원적 기능을 갖고 있다고 한다. 농산물생산, 생활·농업의 공간제공, 국토보전, 수자원함양, 지구환경보전, 어메니티자원 제공, 도농교류·소통의 장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농의 이러한 역할은 어떠한 대농이나 산업분야보다도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그들이야 말로 저탄소, 녹색성장의 본보기이다.

소농은 농가소득측면에서 대농보다 열세에 있지만, 농촌을 꿋꿋이 지키는 중요한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소농은 자급을 위한 집약농업을 하므로 오랜 세월동안 가족을 위해 농지를 만들고 그 땅에 맞는 작물을 열심히 재배하고 자손에게 그 기술을 전수하는 기능을 해 왔다. 소농의 땅에 대한 애착은 조방적인 대농의 애착과는 차이가 있어 논과 밭에 애정을 쏟아 아름다운 농촌을 가꾸며 작은 땅에서 이웃과 서로 협동하고 도와가며 살아왔다. 그들은 오랜 과정 속에서 아름다운 문화경관을 만들어 내고, 그 속에서 지역마다 고유의 풍습과 전통 등 다양한 문화가 태어났다. 최근 다랭이 논에 대한 재평가는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다랭이 논과 밭은 그들의 몇 대손의 소중한 노동과 노력이 축적된 결과이며, 지금에 와서는 중요한 문화적 가치로서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곳은 소농이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그들의 일터이며 존재의 이유이기 때문에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꿋꿋이 지키고 있는 것이다.

소농은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데 크게 기여해왔다. 소농은 산간지나 계곡, 습지 등의 환경조건, 즉 토지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것에 적합한 농산물을 배치하여 자연의 힘을 최대로 발휘시키는 농업을 해왔다. 소농은 토지의 자연적인 제약조건을 극복하기 위하여 농지를 개량하고 재배법을 개선하는 등 토지생산성 향상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지만,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법을 알고 있다. 비가 오면 비를 잘 이용하고 눈이 내리면 눈을 천혜로서 활용한다. 자연에 철저히 순응해 가며 인위적인 것과 잘 조화를 이룬다. 소농이 주위의 자연환경과 잘 어울리는 농촌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결과 지역 환경에 맞는 다양한 생물(송사리, 개구리, 물방개 등)들이 자연스럽게 서식하게 된다. 최근의 도농교류, 체험학습은 농촌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명체들이 우리에게 안전한 먹거리와 깨끗한 환경을 제공하고 지구를 지켜주는 소중한 자산이라는 것을 체험하게 해준다. 소농이 자연에 생명력을 불어 넣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지속가능한 농업이다.

지구적 규모에서 진행되는 환경파괴는 현대과학기술과 현대농업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그 책임에서 벗어 날 수 없다. 농업은 식량생산을 통해 인간의 생존이라는 것을 책임지고 있으므로 생산기술이 한 부분에서라도 환경파괴를 일으킬 요소가 발생하면 그 피해는 다양하게 퍼져나간다. 논에 제초제를 계속 사용하면 그것이 강물로 흘러들어 물고기에 해를 입혀 미꾸라지나 붕어 등이 사라지게 된다. 우리는 가끔 옛날을 회상하며 “어렸을 때는 시골에서 잠자리를 잡고 반딧불을 밝히며, 개울가에서 피라미물고기를 잡으며 지냈는데.....”하며 농촌에서 그 모습이 사라져가고 있음을 안타까워한다. 우리가 진심으로 반딧불과 피라미물고기를 볼 수 있는 농촌을 그리워하고 원한다면 소농은 없어져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농촌에 제대로 정착하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소중한 가치이다.

이와같이 소농이 현대사회에서야 말로 필요한 당위성을 돈(화폐)이 아닌 다른 가치에서 발견하여 한국농업을 뒤덮고 있는 화폐경제중심의 구조를 조금씩 변화시키는 행동이 절실히 필요하다. 자연과 땅과 다양한 문화를 지켜온 소농의 다양한 가치를 사회비용으로 꼼꼼히 따져봐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